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마지막 날, 쨍한 햇빛이 있는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별로 없는 정거장에서 내려 소풍 나온 사람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미술관으로 향했다.
매표소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푸에 대해 설명하는 누군가의 설명을 스쳐 들었다. “푸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예요”. 푸가 파란색을 좋다고 했던가, 푸의 노오란색과 빨간 티셔츠를 생각하며 노란 매표로소로 향했다. 매표소 근처에는 노란 바나나 우유로 장난치는 아이들로 시끄러웠다.

표를 받고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입장객을 반기는 푸와 친구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우산과 파란 풍선이 둥실 떠있었다. 보기 드문 원색으로 가득한 입구였다. 찾아보니 지나가던 누군가의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푸와 파란색은 제법 잘 어울렸다.
우리가 아는 푸는 디즈니에서 나왔지만 푸는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동화책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When We Were Very Young’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로빈은 밀른의 아들이고, 푸와 친구들은 로빈이 가지고 있는 인형들이다.
푸의 집과 피글렛의 집, 벌이 있는 나무와 모험을 떠나게 되는 북극까지 어린 아이의 상상 속 같은 장소들은 실제로 로빈이 놀던 곳을 바탕으로 밀른과 쉐퍼드가 섬세하게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이렇게 실제에 기반한 동화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상상은 다른 것보다 쉽게 공감을 이끌어온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벽면 가득한 푸 관련 물품들이었다. 1930년대 테디토이 컴퍼니에서 제작한 인형부터 악보, 스핀오프, 디즈니, 최근의 캐스키드슨 콜라보까지 푸의 역사를 아기자기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다음 전시 공간은 보다 푸 다웠다. 하얀색과 하늘색의 줄무늬 벽지와 빨간 커튼, 그리고 작은 침대는 로빈의 방을 연상케 했다. 그곳에서 작품은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밝은 색감에 생기가 느껴지는 빨간색 때문인지, 로빈의 방을 구경하는 듯한 구조 때문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전시실이 푸에 대한 하나의 문화공간 같았다. 따로 포토스팟이 있지만, 관람객은 원하는 푸의 모먼트와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전시’의 성격은 약했지만, 푸가 주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곰돌이 푸: 항상 친구들을 배려하는 곰돌이크리스토퍼 로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제일 좋아하는 소년피글렛: 소심하고 겁 많은 돼지이요르: 항상 우울한 나귀티거: 자신감 충만한 말썽쟁이 호랑이아울: 허세 뒤에 무지함을 숨기고 있는 부엉이캉가: ‘루’가 걱정인 엄마 캉가루래빗: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동대장 토끼루: 호기심 많은 아기 캉가루


전시는 어른에게는 다소 심심한 맛이었다. 어른의 마음으로 굿즈에 월급을 탕진하려 했는데 전시가 건전해서 의지를 잃었다. 디즈니의 푸가 아닌 원작에 집중한 만큼 얼마 전 DDP에서 있었던 디즈니처럼 관람객의 지갑을 털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동심을 이상하게 채우려고 한 것 같아 짧게나마 반성했다.
내가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맛’음료에는 향이 아닌 원물이 들어가야 한다. 어릴 적 자극적인 맛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요즘의 맛들은 건강한 맛을 낸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푸는 바나나맛 우유 같았다.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바나나 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