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너무나 외면하는 삶을 살아간다.
<고발자들>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많은 사람들이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사색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물론 그랬다. 왜냐면 고발자라는 것은 사회의 긴밀하고 아래에
있는 어떠한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상 밖으로 꺼내고자 하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 연극은 사회와 개인 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더욱이
나 자신과 나,의 관계까지 보여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극 중 배우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혹은 타인의 비밀을 고발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의 고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비밀을 가지게
되며, 어느새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그 묵직한 감정을 터져나오도록 둘 것인가, 아닌가는 결국 나 자신과 나의 관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고발자들의 이러한 내면 세계과 현실을 들여다보며 너무나 극적인 느낌을 받고는 했다. 말 그대로 내가 아직 느껴본 바가 적은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세상 경험이 적은 나조차도, 부조리를 느꼈지만 ‘이만한
일은 원래 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하며, 웃으며 넘어간
일이 상당했다.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가진 것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나 외면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 작품을 통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그 감정, 불편했지만 ‘좋은게 좋은거’라며 지나쳐온 그 마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불편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객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에게 배우들과 무대가 주는 느낌이란 정말이지 어둡고 답답한 회색 일색 뿐이다. 어쩌면 무대 자체는 고발자들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퍼포먼스, 행위란 더욱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 몸짓들은 어쩌면 이렇게 강렬한 형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각인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정신적인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절제를 통해서 더욱 첨예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으나 몸으로
표현되는 그 스트레스와 괴로움은 나를 포함해 관객으로 하여금 둔탁한 무언가로 맞은 것처럼 무겁고 커다란 충격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너무나 그로테스크해서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세심한 연출에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다. 넋을 놓고 보게 되고 그 이후에는 찝찝한 불편함이 남아 극장을 나와서는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컸던 연극이었다.
프리뷰를 작성했을 때 그들이 현실과 맞서서 <고발자들>이 되었던 오로지 한 이유는 ‘그냥 해야 했기 때문에’라고 생각했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어떠한 이유 없이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실천하고 그 때문에 온갖
아픔을 받은 괴로움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한 관객들이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단
하나일 것이다. 과연, 나는 살아가며 <고발자들>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젠가 마주보게 된 자신의 모습이 깨끗한 물에 비치어진 모습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