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
2017.03.11 토요일 17:00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
#날 좋은 때

한창 꽃샘 추위가 이어지더니 막상 연주회가 있던 날은 유독 맑았다. 공기엔 봄 냄새가 서려있고 사람들의 차림새도 어딘가 가볍다. 장소는 성남에 있는 티엘아이 아트센터. 제주도에서 20여 년을 살았고 서울에 온 지 이제야 1년이다. 물론 요새 지도 앱이 잘 되어 있어 가끔 종종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것만 빼면 서울 근교는 놀이터나 다름없다. 다만 그 곳도 홍대-합정-상수 이 정도라 그 외 지역은 항상 낯설다. 그래서 늘 새로운 지역에 갈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돌아다니는 편이다. 이런 날 비가 오거나, 추우면 걱정부터 앞서는데 이 날은 날도 딱 들어맞았다. 처음으로 분당선을 타보고 혹시 잘못 탄 거 아닌가 두리번 두리번. 야탑에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 보이는 풍경들,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지상으로 나와 근처를 돌아다니다 자그마한 개인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공연 시작 전까지 시간을 떼웠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프리뷰와 정보를 읽어보는 시간도.
공연을 보러 간다는 일은 단순히 그 시간대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미리 공연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장소가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일 때 미리 노선을 짜고 계획을 하는 것 모두가 의미 있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전

티엘아이 센터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4번 출구에서 나와 쭈욱 직진으로 가면 바로 커다란 건물, 그 위에 티엘아이 아트센터라고 적혀있는 간판 덕에! 새 건물인지 조용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가 표를 받고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 사실 피아노 연주회는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일이라 더 신기하고 설렜다. 연극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 시작 10분 전 안으로 입장.
#선우예권, 피아노 연주회

들어서자, 그다지 크지 않은 내부에 둥근 조명이 쏟아지고 그 가운데에 검은 피아노.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 착석하고 불이 어두워진다. 오롯하게 피아노만 보여지고 연주자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의문도 잠시 무대 오른쪽 문이 열리고 양복을 차려 입은 피아니스트가 들어온다.
<연주 순서>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6번 작품 82
Prokofiev
Piano Sonata No.6, Op.82
슈베르트
즉흥곡 3번 작품 142 Bb 장조 D.935
Schubert
Impromptu Op.142, No.3 in Bb Major, D.935
Intermission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c단조 작품 D.935
Schubert
Piano Sonata No. 19 in c minor, D. 958
의자에 앉고, 바로 연주가 시작된다. 내가 상상한 피아노 연주회는 단조로움 이라는 단어와 가까웠는데 아니었다. 음악의 선율에 따라 표정이 바뀌고 호흡이 바뀐다. 음악 소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극에 달할 수록 피아노 음에 섞여 거친 숨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섞인다. 밝은 음조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천둥번개 와도 같은 부분에선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니까 단순히 평범하게 앉아 연주한다는 편견이 와르르 무너졌다. 한 곡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박수를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치고 있다. 잠시 무대에서 빠져나가 한숨 돌리고 또 다시 앉을 때면 마치 처음처럼. 다시 음악과 선율에 따라 표정이 숨이 바뀐다.
모든 곡 연주가 끝나고 나가는 길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런 게 연주회구나. 내가 음원으로만 듣던 것 하고 차원이 다르구나. 피아니스트란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구나. 해가 길어져 어스름한 길을 따라 돌아가는 내내 그 음악들이 맴돈다.
연극에서 배우들이 한 이야기를 동작과 표현, 음악, 무대를 이용하여 표현한다면 피아니스트는 그 모든 것을 피아노와 자신 그 둘의 조화로 풀어낸다. 첫 연주회였고, 예상을 넘는 충격과도 같은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