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뭔가가 왜 좋은지 물어봤을 때 "그냥 그 자체가 다 좋다고" 말하곤 하듯이, 제게도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집에 가는 길 노릇노릇한 색깔로 동그랗게 떠 있는 보름달, 복실복실 털이 보드랍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반겨주는 멍멍이, 가끔 어스름한 밤에 아련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귀뚜라미 소리, 비오는 날 설레게 하는 부침개 냄새, 설거지가 끝나고 마시는 식후땡 믹스커피, 겨울일수록 가장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인 따땃한 이불 속 같은 것들입니다. 영화나 책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하나 꼽은 '언제 보아도 좋은' 영화는 영화 <오만과 편견>입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여러 차례 드라마와 영화로로 제작된 고전 중의 고전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1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소설로 등극하기도 했죠. 내용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간단합니다. 결국 주인공인 엘리자베스가 일명 '까칠한 왕자님' 다아시를 만나 서로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들을 풀고 사랑을 이룬다는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토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기승전' 연애로 이어지는 한국 드라마를 10년 정도 보고 나서 저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지쳤습니다. 10년 시청자의 노하우라면 무슨 대사를 할 지도 뻔해집니다. 여주인공은 너무나 청순가련하거나 씩씩한 캔디거나. 그래도 결정적 순간의 어려움은 우리 멋지고 어디 하나 빼놓은 것이 없는 남주인공의 도움으로 이겨냅니다. 집안의 격차로 슬픈 고비를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머리 속에 펼쳐집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오만과 편견>은 고전은 21세기 한국 드라마처럼 틀에 박혔겠지 생각했던 저의 '편견'을 깨주었습니다. 소설부문 10대 첫 문장 안에도 손꼽힌다는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 첫 시작은 이렇습니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However little known the feelings or views of such a man may be on his first entering neighborhood,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this truth is so well fixed in the minds of the surrounding families, that he is considered the rightful property of some one or other of their daughters.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겉보기에는 흔한 그렇고 그런 로맨스인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은근슬쩍 비꼬는 말투입니다. 사람을 감정이나 생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득이나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더 공감가는데요. 이미 작가는 첫 문장에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냥 읽으면 '그래, 돈많은 독신남자한테 남은 건 결혼뿐이겠지' 싶지만 뒤집어 질문하는 느낌도 갖고 있는 문장입니다.
'그게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라는 데 그게 왜 진리지?'
둘의 '썸' 아닌 썸은 꽤나 험난한 오해와 편견의 연속입니다. 만나면 예의를 갖춘 듯한 말투로 꽤나 돌직구스러운 말과 풍자를 연발하는 대화도 인상깊습니다. 시작은 다아시가 도착한 후 엘리자베스와 만난 첫 무도회입니다. 신나게 무도회를 즐기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역시 듣던대로 '오만'하며 게다가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두번째로 만난 무도회에서 엘리자베스도 다아시에게 이미 편견을 갖게 되어서 데면데면 까칠한 상황입니다. 의외로 엘리자베스가 엄청난 실력이 아닌데도 빼지 않고 피아노를 칠 때 쯤에는 신기하게도 무관심했던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어느새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일이란 참 알 수가 없죠?
영화에서의 또다른 매력포인트는 주인공들처럼 똑부러진 사람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허당'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고 매정한,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언니 제인과 다아시의 친구 빙리의 사랑을 방해해서 잔인하고, 자신에게는 친절하고 예의바른 위컴씨를 보면 싫은 표정과 행동을 감추지 못해서 매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근사근 하기는 커녕 까칠한 모습에 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숨겨져 있던 많은 사실과 말하지 못했던 자초지종들이 담긴 다아시의 편지를 통해서 그녀는 다아시에 대한 미안함과 좋아하는 감정을 뒤늦게 느낍니다.
현실에선 우리 모두가 이들처럼 허당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프라이드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편견이 있습니다. 특히 내가 나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할수록 내 눈에 보이는 것,들리는 것들로 나만의 결론을 마음대로 내려버리고 말 수 있어서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사람들의 체면을 차려주고 매너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걸 택하는 다아시같은 사람에겐 엘리자베스같은 사람들이 익숙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아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가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달랐던 이유는 그녀가 다아시가 쌓아놓은 오만이라는 차가운 벽에 숨겨둔 비밀들을 묻고 따지고 이해하려고 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을 그 벽의 존재를 알고 함께 차가움을 조금씩 덜어내는 셈인거죠.
영화 전반에는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고 구석구석 아름다운 영상이 펼쳐집니다. 감독을 맡은 조 라이트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엔딩으로 가면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두 사람이 다시 극적으로 만나는 새벽 언덕에서 만나는 장면입니다. 엘리자벳은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다아시에게 "손이 참 차갑군요"라는 한 마디를 하면서 그의 차가운 손을 감싸줍니다. 정말 부드러운 피아노곡과 장면에서 저는 왠지 그 음악을 들으면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중략>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은, 오만과 편견으로 가려진 차갑고 견고한 마음의 벽을 따뜻함으로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주는 영화 <오만과 편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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