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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KOREA FANTASY - 애국가 작곡 80주년 · 광복 70주년 · 안익태 선생 서거 50주년 기념 음악회

by 이경민 에디터
2015.08.31 00:31
​대한민국 애국가 탄생 80주년 / 광복 70주년
안익태 서거 50주년 기념음악회
KOREA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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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4일 월요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 애국가를 제창했다.
살면서 이런 음악회는 처음이었다.
애국가를 다 함께 한 마음으로 일어서서 제창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안익태 선생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시었는지 깨달았고,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분이라는 말에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고, 또 한 번의 배움의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또한 애국가 역사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세상엔 쉬운 것 하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인생에 대한 목표 하나가 더 생겼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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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역사
​애국가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애국가에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랫말과 곡조를 붙여 사용한 것은 조선말 개화기 이후부터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애국가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이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도 10여 종류에 이른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랫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해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 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랫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이었다.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안익태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곡을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으나 이는 해외에서만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랫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고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해외에서도 이 애국가가 널리 전파되어 실질적인 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안익태 |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 이자 애국가의 작곡자

1965.07 런던 뉴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1959.07 런던 필하모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1946.10 ~ 1959.05 마요르카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 1944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1940 비엔나 교향악단 지휘자
1938.02 더블린 방송교향악단 객원지휘자
1936.09 부다페스트 교향악단 객원지휘자
1934 체스트넛 힐 장로교회 성가대 지휘자
1934 앱나키캠프 관현악단 지휘자
1934 필라델피아 심포니클럽 보조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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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진

- 지     휘 : 정치용
- 관 현 악 : 수원시립교향악단
- 합 창 단 : 국립합창단(60인), 숭실대 콘서트 콰이어(60인), 
국민참여 합창단 (250인)
- 솔리스트: Trumpet.(안희찬)
Sop.(한예진), Alto (김선정), Ten.(강무림), Bass (임철민)
- 아나운서: 양종아


<프로그램>
 
1 부
Fantasie and Variation “The Carnival of Venice” 
- Jean Baptiste Arban (1825-1889)
(베니스의 사육제에 의한 Trumpet 환상곡과 변주곡)  
- Trumpet 안희찬
Symphony No.9  -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국립합창단, 숭실대 콘서트콰이어, 성악 Solists

2 부
Lo Pi de Formentor (프로멘토의 소나무)
- 수원시립교향악단
White Lilly (흰 백합화)
- Sop. 한예진, Bass. 임철민
Arirang Hill (아리랑 고개)
- Alto. 김선정, Ten. 강무림
Korea Fantasy(한국환상곡)
- 국립합창단, 숭실대 콘서트콰이어, 국민참여합창단

 
 
<작품 소개>
​교향곡 제9번 ‘합창’ - 베토벤
「제9교향곡」의 스케치는 1790년에 이미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1817년에는 명확한 스케치가 남겨져서 구상의 착실한 진행을 말해 주고 있다. 한편 실러의 장대한 『환희의 송가』의 작곡을 착상한 것은 아직 본 시대의 일로, 1798년의 스케치에는 시의 일부와 그 선율이 남아 있다. 1822년 10월 런던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베토벤(독일)에게 교향곡의 의뢰가 들어왔다. 이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위에 말한 두 개의 구상이 제10교향곡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날의 제9교향곡 「합창」(교향곡)으로 결실되었던 것이다. 초연은 1824년 5월 7일 자신의 지휘로 행해졌다. 이미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독일)은 등 뒤에서 일어나는 청중의 환성과 박수를 느끼지 못해 알토 가수 웅겔의 주의로 정면을 향한 채 한층 높아지는 갈채에도 곰처럼 무뚝뚝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2악장에 스케르초, 제3악장에 아다지오를 둔 구성은 이색적이지만 끝악장의 환희를 돋보이게 하여 효과적이다. 악기 편성은 표준적인 2관 편성에 의거하고 있지만, 끝악장에서는 타악기가 충실해진다. 성악부는 4성의 독창과 혼성 합창으로 이루어졌다.
 

​“포르멘토의 소나무 (Lo Pi de Formentor)” – 안익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안익태는 마음의 혼돈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으나 1951년 둘째 딸의 출생을 계기로 다시 안정을 되찾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1951년 11월 20일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포르멘토르의 로 피>이며 마요르카를 주제로 한 두 번째 교향시이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소장되어있는 이 악보의 맨 앞에는 스페인어 친필로 ‘내 모든 정성을 다하여 이 작품을 레오노르 세르베르 데 몰취 여사에게 바칩니다.’ 란 헌사가 쓰여 있다. 데 몰취 부인은 안익태의 열성적 팬이었으며 그의 가족과도 가까운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52년 2월 25일에 마요르카에서 초연되었고, ‘마요르카 신문’의 음악평론가 페드로 바르셀로는 ‘곡의 내용에 있어서 비단 관현악적 기법뿐만 아니라 시가 지니고 있는 그 감동적인 위대함은 화음과 관현학적 악구를 통하여 생생한 느낌을 주고 있다’고 평했다. 언급된 것처럼 이곡의 중간에는 ‘코스타이 요베라’의 시가 낭송되는 특징이 있으며 이 시는 안익태가 이 작품을 쓰도록 영감을 불어 넣어 준 시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시의 삽입없이 곡을 계속 연주할 수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곡의 구성은 3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을 위한 ‘교향시’ 이며 바그너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의 화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곡의 전체 구조는 A-B-C-B-A의 아취형태로서 C부분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연속된 반음계의 배경과 금관악기군의 웅장한 선율로 시작되는 A부분에 이어, B부분에서는 현악기 군의 호소력있는 선율이 등장하고, 3박자 계열의 춤곡인 왈츠 형식의 악구를 아치 구조의 중심축으로 삼아 앞에서 제시되었던 요소들이 다시 등장한다.


​“한국의 생활 (Korean Life)” – 안익태

안익태가 자신의 작품에 <백합(The Lily)>이란 제목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34년 필라델피아의 악보출판사인 엘칸-보걸(Elkan-Vogel)사의 의뢰로 [Korean Life(한국의 생활)] 모음곡집을 출판했을 때였다.
현재 <백합>의 악보는 남아있지 않으나 1962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 <흰 백합화(White Lily)>를 소개하는 글에 ‘한국생활 시리즈의 제4번’이란 설명이 있는 것을 볼 때 두 곡이 동일한 것인지 개작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분명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성악과 첼로 곡의 두 가지 버전으로 남아있다.
1963년 5월 4일 제2회 국제음악제의 ‘한국음악의 밤’에서 알토 윤을병의 노래로 한국 초연되었고, 다음 해인 1964년 5월 23일 제3회 국제음악제에서 첼리스트 귀이팔로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분은 3/4박자의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이고 두 번째 부분은 3/8박자의 경쾌한 리듬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민요 <아리랑>의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부분은 도입하였으며, 처음 여덟 마디가 두 번째 악구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세 번째 악구의 마지막부분에서 변화를 보이는 a-a-a’의 형식이다. 두 번째 부분은 리듬이 빨라지고 반주도 분산화음 형태로 바뀌면서 선율도 마지막 네 마디를 제외하면 첫 번째 부분과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특히 <도라지타령>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선율의 짧은 악구가 반복되는 특징을 가진다.
 

​한국환상곡 - 안익태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작곡하였고, 1938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더블린의 아일랜드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작품은 독일 후기낭만파의 양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대작으로, 단군의 개국을 알리는 서정적인 선율로부터    시작하여 도중 외적의 침략으로 한때 나라를 잃기도 하나 항쟁 끝에 끝내는   광복을 맞이한다는 교향적인 대서사시로 되었다. 특히 후반부의 합창부분에는 《애국가》의 선율이 흐르고 있어 매우 감동적이고도 인상적이다.
안익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는 1961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 합동으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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