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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단절과 몰이해가 초래한 비극, '희곡' [문학]

by 차소연 에디터
2015.04.01 17:30
 
 연기를 위하연 쓰인 문학 작품, '희곡'
 드라마와 연극은 배우가 연기를 통하여 예술을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나 이는 독자적으로 예술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극작가와 호흡과 조화, 협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희곡을 연극과 드라마에 빗대어 부르기도 하며, 또한 희곡은 없어서 안 될 중요한 문학작품이다.

 이러한 희곡은 오이디푸스, 맥베스, 한 여름 밤의 꿈 등  우리 주위에는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 중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에게 사랑 받았으며, 오늘날 까지 영화와 연극 등의 극본으로 사용되는 '잘자요, 엄마' 희곡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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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몰이해가 초래한 비극, '희곡' 

 희곡 '잘자요, 엄마'는 마샤 노먼(Marsha Noman)의 작품으로 자살을 예고한 딸과 이를 말리려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비극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3년 희곡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며, 동시에 영화와 연극 등으로 제작되고 공연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라기에 희곡 '잘자요, 엄마'는 어두우며 딸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서 극이 전개가 된다. 과연 이러한 비극을 통해서 마샤노먼이 말하고자 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희곡 '잘자요, 엄마'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델마는 딸인 제시를 위해 캐러멜 애플을 만들고, 제시는 엄마인 델마를 위해 매니큐어 칠을 하려했다. 이러한 둘의 관계는 평범하며 화목한 모녀관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엄마. 나 오늘 밤 자살할 거야."
 
 하지만 제시는 델마에게 자살을 예고한 후, 권총의 방아쇠를 돌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제시의 행동과 죽음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달리, 두 모녀관계가 결코 평범하고 화목하지 않으며 비정상적임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둘의 이면적인 관계는 어떠하며, 두 모녀를 비극으로 몰아낸 것은 무엇인가.

 '잘자요, 엄마'는 표면적으로 딸의 자살을 막기 위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지만, 이면적으로 단절과 몰이해로 이루어진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려낸다. 델마는 제시에게 거짓말을 한다. 델마는 제시가 어릴 때 부터 간질을 앓았다는 사실을 숨겼으며, 제시를 피해 자신의 집에 찾아오지 않은 친구를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이에 제시는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델마를 몰아 붙인다. 델마의 거짓말은 제시를 위해서였다지만 이는 엄마의 위치에서 생각한 말과 행동이다. 그러므로 딸의 진심을 감춘 행위에 속한다. 그리고 감춘 진실을 제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델마는 제시를 불편하고 불안전한 존재로 만든다. 이는 모녀관계에 진실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생긴 비극의 결과이다. 만일 두 모녀관계과 진실로 이루어졌더라면, 제시는 자신의 삶에 큰 회의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며 극단적인 선택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델마의 진실단절 행위뿐만 아니라, 제시의 몰이해도 비극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이다. 델마는 엄마의 위치에서 말과 행동을 하였으나 제시가 진심으로 살길 바라였다. 하지만 제시는 델마의 진심을 몰이해하고 회피하며 눈과 귀를 닫는다. 그리고 제시는 불만의 원인은 델마에게 있고 죽음만이 델마에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며, 자신의 자살을 델마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이는 두 모녀의 쌍방향의 이해가 아닌, 제시의 입장에서만 나타나는 일 방향적인 이해이다. 그러므로 델마를 향한 제시의 몰이해는 두 모녀의 삶을 비극으로 이끄는 원인이 된다.

 '잘자요, 엄마'의 작가 마샤 노먼은 ‘가족은 그저 우연일 뿐이며, 가족은 의도해서 가족이 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델마와 제시는 눈앞에 놓인 진실을 회피하고 외면하였다. 그리고 엄마와 딸이라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행동하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진실회피와 외면이라는 목적을 위해 델마와 제시는 의도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래서 두 모녀는 마샤 노먼의 말처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진정한 가족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해야 형성될 수 있다. 만일 델마와 제시가 서로 진실을 마주한 채 상대방의 가치를 이해했더라면, 극의 마지막은 함께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모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모녀는 오로지 자신들의 입장과 위치에서 상대방을 대하였기에 단절과 몰이해가 발생하였고, 그리고 서로의 가슴을 유리조각으로 파고 찌르는 것과 같은 비극을 맞이하였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하며 살아간다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제시와 델마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를 하고 소통을 한다면 우리는 제시와 델마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비록 마샤 노먼은 희곡 '잘자요, 엄마'를 통해 소통의 부재와 몰이해라는 문제점을 통한 비극을 보여줬으나, 희곡과 같은 우리 인생은 비극이 아닌, 희극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무엇인지 생각하며 희곡 '잘자요, 엄마'를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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