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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삶이란 질서와 혼돈 사이 줄다리기 -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 [도서]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창발하는가

by 양혜정 에디터
2026.10.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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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여러분에게 묻겠다. 당신은 어떻게 아트인사이트의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가? 어떻게 이 사이트와 이 글을 접했고, 이를 접하게 만든 관심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그 관심을 만들어낸 조건은 왜 발생했는가?

       

      질문이 자칫 막연하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인생의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도 있음을. 유년 시절 보고 느꼈던 일상의 작은 장면이, 그 뒤 이어지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나비 효과를 일으켜 완전히 다른 삶으로 우릴 데려다 놓을 수도 있음을. 초기 조건의 미묘한 차이가 시간이 흐른 뒤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설명하는 ‘카오스 이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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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질문의 답을 집요하게 좇는 도서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저자가 학회 강연 직후 젊은 서빙 직원에게서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이루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순간에서 시작한다.

       

      저자인 데이비드 수실로는 마약중독자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다섯 살 무렵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십수 년을 보육원과 친척의 집, 그리고 엄격한 통제의 기숙학교를 전전하며 보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방임과 애정결핍, 무자비한 폭력에의 노출, 어른을 향한 불신은 데이비드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법을 익혀야 했던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조차 마음껏 울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경과학자가 되어, 40여 편의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룬 책을 전 세계에 내놓았다. 그는 산산조각 난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그 안에 어떤 조건들이 놓여 있었고 어떤 연결들이 이루어졌기에 오늘의 자신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저자가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뇌에 관한 다큐멘터리 때문이었고, 이 다큐멘터리는 AP 수업의 교사가 시험지를 잘못 주문하는 바람에 수업 시간을 메꾸기 위해 틀어 준 것이었으며, AP 수업은 끔찍한 기숙학교로부터 하루빨리 탈출하기 위해 수강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련의 우연이 이어져 그를 뇌 속 신경계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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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비디오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게임 '미즈 팩맨'

       


      저자는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과 성장기를 신경과학의 개념과 병치해 풀어냈다. 뇌가 어떻게 정보를 인식하는지, 스냅스들의 연결을 통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을 해석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차분히 서술하고 있는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신경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한 개인이 만나는 수많은 우연이 어떻게 그의 일생을 바꾸는지 궁금한 이에게 추천할 만하다.

       

      이 책에서 과학적 개념을 삶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가령 이런 식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창발’이라는 개념은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출현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한 마리만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수십,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모이면 그들이 떼를 이루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집단적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을 ‘창발’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책의 5부 ‘창발’에서, 저자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정신분석가 라케르차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삶을 실제로 산 당신은 그 삶에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에, 더 넓은 맥락을 보기가 어려운 겁니다.(p.376)”
       

       

      이를 창발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삶에서 일어나는 개별적인 사건을 모두 하나하나 경험하는 사람은 각각의 사건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어 객관성을 잃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되면, 개별적인 사건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하나의 패턴이 드러나기도 한다. 수많은 경험과 관계가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은 끝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 역시 하나의 창발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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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의 제목인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질서와 무질서, 즉 혼돈이 균형을 이루는 경계 영역을 뜻한다.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서 시스템이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다는 복잡계 과학의 개념이다. 데이비드 수실로의 삶은 한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던 혼돈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스스로의 끈기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질서와 방향성을 찾아가며 저자는 마침내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춤을 출(p.413)”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저자는 가졌지만, 저자의 누나인 에스터는 가질 수 없었던 기회들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저자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났지만 에스터는 그렇지 않았고, 따라서 학업과 미래 계획에 관해 저자에게는 주어졌던 행운들이 에스터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저자는 나이가 어렸기에 부모의 심각한 상황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보다 몇 살 위인 에스터는 더욱 또렷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인식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가 두 남매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하나의 변수가 되지 않았을까.

        

      〈카오스의 가장자리〉를 읽으며, 지금 여기에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사소해 보였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삶에 개입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서로 무관해 보였던 수많은 경험과 선택은 어느 순간 하나의 맥락을 이루고, 지금의 나라는 새로운 형태로 창발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내리는 아주 작은 결정들은 훗날의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 놓을까.

       

      먼 훗날 다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그때의 나만이 발견할 수 있는 창발을 마주하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그리고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추락하지 않고, 그 불확실한 경계 위에서 나만의 춤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그리고 독자 여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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