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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먼가 작고 오싹한 세계관
얼마 전, 나의 알고리즘과 일상을 장악한 만화가 있다. 바로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 원제 - 치이카와)』다. 단순히 귀여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 대비되는 만화 속 세계관에 빠져들었다.
먼작귀들은 작고 조금은 하찮아 보이는 존재지만, 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이들은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제초를 하거나 공장에서 노동하고, 보수를 올리기 위해 자격증을 딴다. 괴물과 공존하며 목숨을 걸고 괴물을 토벌하기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괴물이 되어버리기도 하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자신이 토벌해야 할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의 주거 환경도 단순하지 않다. 주인공 치이카와는 새집에서 푹신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들지만, 가르마(하치와레)는 문도 없는 동굴에 살며 종이 상자 위에서 밥을 먹는다. 또 다른 친구 토끼(우사기)는 어디에서 사는지조차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먼작귀의 세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의 평화로운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인어 섬의 비밀
이번 극장판은 원작 만화의 '세이렌 편'을 다룬다. 어느 날, 먼작귀들은 막대한 토벌 보수와 섬의 특산품을 제공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인어섬으로 원정 토벌을 떠난다. 그러나 섬에 도착한 뒤, 세이렌에게 먼작귀들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약속된 보수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치이카와 일행은 섬의 토착 먼작귀들에게 세이렌을 토벌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한 약육강식 같다. 먼작귀를 잡아먹는 크고 강한 세이렌은 악역이고, 작고 약한 먼작귀들은 자신을 지켜야 하는 피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이렌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동료 인어가 섬의 먼작귀들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복수와 범인 수색을 위해 먼작귀들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죄인인가
먼작귀는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뚜렷한 작품이다. 하지만 강자는 언제나 악하고, 약자는 언제나 선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세이렌 편'은 각자의 사정이 얽힌 사건을 통해 선과 악을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잎(히토하)은 세이렌의 꼬리에 부딪혀 생명이 위독해진 두잎(후타바)을 위해 '인어 고기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전설을 믿고 인어를 살해한다. 그리고 인어 고기를 두잎에게 먹이고 살려낸다.
하지만 두잎은 자신의 의지로 먹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한잎이 인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당황한 듯 복잡해 보인다. 두잎은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혹은 이 사실을 혼자 짊어지지 않기 위해 한잎에게도 먹을 것을 권하고, 결국 한잎 역시 이를 먹게 된다. 이후 둘은 세이렌이 범인을 찾으며 섬의 먼작귀들을 해치는 상황에서도 이를 묵인한다.
두잎이 다친 것은 세이렌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은 한잎이 두잎을 살리기 위해 인어를 죽이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세이렌 역시 자신의 동료를 잃게 되었다. 서로의 소중한 존재를 지키려 했던 행동은 또 다른 희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한잎은 두잎을 살리기 위해 인어를 죽였고, 세이렌은 자신의 동료를 잃은 슬픔에 복수에 나섰다. 양쪽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행동을 모두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이 사건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 단순하게 나누기보다, 각자의 사정과 선택이 어떻게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치이카와는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갖고 있다. 하지만 끝내 침묵을 택한다. 영화 후반부, 한잎과 두잎 앞에 선 치이카와의 묘한 표정이 내내 머리에 맴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겹쳐 보았을지도 모른다.
분명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왔지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잘못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악인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이 작고 귀여운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마주한 이야기는 현실의 일처럼 복잡하고 착잡하다.
삶이 평화롭지만은 않기에
어쩌면 인어섬에서 벌어진 일 역시 먼작귀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한 단면일 것이다. 이들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먼작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의 일상이 마냥 행복하고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먼작귀들은 고된 하루를 버텨내고 작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해가 뜰 때까지 밤을 새우며 채집을 하고, 작은 보수 주머니를 들고 아침밥을 먹으러 간다.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해를 맞으며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울린다.
절망 속에서도 각자의 하루를 이어가는 먼작귀들의 모습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에 더욱 이 만화에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귀엽고 평화로운 일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세계지만, 그 안에서도 먼작귀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작은 행복을 찾아간다. 어두운 세계를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버텨내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