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일은 어렵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정의만큼이나 사랑의 모양 또한 다양하고, 그 어느 하나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렵기에, 결국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쓰는 모든 시도는 다른 어떤 시도에 대한 도전이자 실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에 대해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이 세계가 사랑의 세계이며, 세계에서 사랑이 계속되기 때문일 것. 그러므로 감히 사랑에 대하여 말해보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틀리면서 옳다.
안톤 체호프 단편집, 『사랑에 대하여』(민음사, 2025)를 읽는다.
하나. 유명한 가수인 아내와 평범한 그녀의 남편이 있다. 아내는 언제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므로 이들 부부의 삶―그들 사이의 사랑 또한 많은 이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녀는 결코 미인이 아니”라는 둥 언제나 아내를 따라다니던 세간의 평가는 이제 “제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며 남편에게까지 확장된다. 취향부터 삶의 태도까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을 과연 무엇이 “연결해 주었고, 연결하고 있는지”는 당연하게 생겨나는 궁금증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 타인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아첨꾼이나 하인으로서의” 남편이 필요했다거나, 아내에게 “돈이 없었다면 그는 그녀를 떠났을 것”이라는 추측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사랑의 당사자들은 어떠한가. 남편은 “그녀는 사랑할 가치도, 미워할 가치도 없는 여자”라고 쓰고, 아내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고 쓴다. 어쩌면 그 두 사람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이유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사랑하게 되는 순간만이 있다는 것. 단지 그 이따금의 사랑만으로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 타인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말할 수 없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도 언제나 “관찰자의 눈”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와 그녀」)
둘.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소박하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자기 운명에 아주 만족하는” 이들이므로 그들의 사랑은 꽤나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복권 당첨 일람표를 찾는다. 그녀가 샀던 복권이 당첨됐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내가 산 복권 번호 일부가 맞아들어가자 그들의 “낯빛이 하얘진”다. 복권 당첨이라는 “가능한 행운에 대한 희망” 앞에서 부부는 흥분하며 각자의 공상을 시작한다. “여행도 하고, 빚도 갚고, 또 그 밖에……” 끝없이 펼쳐지는 황홀한 상상 속에서 남편은 문득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아내가 외국으로 따라나서면 어쩌지? 혼자 여행을 하든, 경박하고 태평스럽고 즉흥적인 여자들과 함께 다니면 좋을 것 같은데.” 황금빛 미래를 맞이할 순간에도 곁에는 여전히 지금의 아내가 있으리란 상상이 그의 완벽한 환상을 깨고 만 것.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아내가 늙고 추하며 온몸에서 부엌 냄새가 난다는 걸 깨”닫고, 사랑은 증오심으로 얼굴을 금세 바꾼다. 그런 표정을 아내 역시 지어보이고 있다. 결국 그들의 복권은 낙첨되고 빠르게 그들 사이를 침범했던 “희망과 증오, 이 둘이 단번에 사라졌”으나, 상처 난 사랑은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다. 평화와 사랑은 동의어가 아니다. 평화로웠으나 행복한 충격에도 단숨에 무너질 만큼 연약해져있던 사랑의 자리로 그들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복권」)
셋. 시골에서 자신의 농지를 경작하며 살아가는 영주가 있다. 자신이 정한 “일정한 외적 질서”를 지키며 일상을 단조롭게 살아가던 남자의 삶에 우연히 어느 여인이 찾아든다. 동료의 집에 초대되어 아름다운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 남자는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고 아름답고 상냥하고 지적이며 매혹적인” 그 여자에게 순식간에 빠져든다. 그 후로 남자와 동료, 그리고 그의 아내는 친밀한 이웃이 되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동료의 아내에게 더욱 깊은 감정을 느낀다. 질서와 금기를 깨는, 이뤄질 수 없거나 이루어져서는 안 될 “무서운 실수”라고 여겨질 분명한 사랑의 오류가 발생했으나 남자는 자책하면서도 끊임없이 되묻는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정당한가?” 명확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답을 애써 부정하며 계속 묻게 되는 마음. 그 ‘어쩔 수 없음’ 역시 사랑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서로를 향한 절실한 마음을 고백한 후 끝내 눈물을 작별을 고한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졌”으나 그들은 그곳에서 분명 사랑을 했고, 질서가 없는 곳에서 계속 사랑할 것이다. (「사랑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랑의 유형에 대하여 말한다. 사랑에는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는(혹은 이따금만 이유가 있는) 사랑이 있고, 잔잔한 평화 뒤에 연약함을 숨겨왔던 사랑이 있으며, 불가역적으로 발생하여 반드시 질서 바깥을 향해야만 하는 사랑도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일반화하려 애쓰지 말고 각각의 경우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끝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사랑의 유형은 그 사랑의 개수만큼이나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랑의 모양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