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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도 원곡이 있을까

SYSTEM SEOUL과 기억의 샘플링

by 황제현 에디터
2026.10.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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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 도착하면 종종 SYSTEM SEOUL의 「너」를 재생한다.

       

      처음부터 정해둔 규칙은 아니었다. 몇 번 같은 노래를 들으며 역을 오갔고, 어느 순간 노래와 그곳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이제는 「너」를 들으면 서울역이 떠오르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너」를 찾는다.

       

      음악과 장소가 이렇게 연결되는 일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SYSTEM SEOUL의 다른 음악을 들을 때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익숙함을 느꼈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완전히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분명 모르는 노래인데, 어디선가 이미 지나친 적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멜로디 때문인지, 전자음의 질감 때문인지, 곡 전체의 분위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었다. 처음에는 원곡을 찾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어떤 음악을 가져왔는지 알아내면 이 익숙함에도 출처가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원곡을 따라가다 보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정말 음악의 원곡이었을까.

       


      어두운 계단과 낯선 초상.png

       

       

      기억에도 원곡이 있을까.

       

      원곡을 찾으면 될 줄 알았다.

       

      SYSTEM SEOUL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따라붙는 말 가운데 하나는 노스탤지어다. 음악웹진 IZM은 SYSTEM SEOUL이 주목받은 배경으로 노스탤지어의 자극과 해외 음악 트렌드의 흡수를 짚었다. 《SS-POP 2》에서는 게임 OST와 2010년대 가요를 비롯한 기존 음원을 활용했고, 그 방식은 샘플링을 둘러싼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SYSTEM SEOUL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가져온 소리만은 아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년」, 「aNYOnE -나의어린시절-」처럼 제목부터 어린 시절과 이미 지나간 시간을 향한다. 《SS-POP 3》에서도 「Summer Time : D」, 「LOST IN SEOUL」, 「내가 어렸어 :<」 같은 이름들이 이어진다.

       

      몇 개의 제목만으로 이들의 음악 전체를 ‘과거에 관한 음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래도 음악을 따라 듣다 보면 지나간 시간이라는 감각이 곳곳에서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것만으로 충분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존재하던 소리를 가져왔기 때문에 익숙한 것이다. 과거의 음악을 가져왔으니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린 것이다. 그 설명은 《SS-POP 3》 앞에서 조금 복잡해졌다.



      붉은 머리와 푸른 머리의 포옹.png

       

       

      샘플이 줄어도 남은 것

       

      IZM은 《SS-POP 3》를 평하며 SYSTEM SEOUL이 이전의 강력한 샘플링 방식을 덜어내고도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리뷰에 따르면 앨범 발매를 앞두고 SYSTEM SEOUL이 내세운 표현 역시 ‘Without sampling’이었다.

       

      그렇다고 음반에서 모든 형태의 차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IZM은 영화의 음성을 인터루드에 사용한 사례도 함께 언급한다.중요한 변화는 ‘샘플이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기보다, 이전처럼 익숙한 과거의 음원을 직접 가져오는 방식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IZM은 《SS-POP 3》가 보여준 특징 가운데 하나로 SYSTEM SEOUL 특유의 향수가 친숙한 과거에만 기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짚는다. 여기서 내가 처음 세웠던 설명에도 빈틈이 생겼다. 

       

      익숙한 원곡의 존재감이 줄어들어도 과거 같은 감각은 남았다.

       

      《SS-POP 3》에도 여름과 어린 시절, 서울처럼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 계속 등장한다. 특정한 옛 노래가 바로 들리지 않아도 이전의 어떤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그렇다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특정한 노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노래가 있었을 것 같은 시간 전체였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SYSTEM SEOUL의 음악보다 내가 느낀 익숙함 자체가 궁금해졌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익숙하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한다는 뜻일까.

       

      음악과 기억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 만났다. 2013년 심리학자 Carol Lynne Krumhansl과 Justin Adam Zupnick은 젊은 참가자들에게 여러 시대의 대중음악을 들려주고 각 음악에 대한 기억과 인식, 선호, 감정적 반응 등을 살펴봤다.

       

      자신이 살아온 시기의 음악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세대뿐 아니라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의 음악에서도 별도의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음악이 가정과 세대를 거쳐 전달될 가능성에 주목했고 이를 ‘cascading reminiscence bumps’라고 불렀다.

       

      물론 이 연구가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실제로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다. SYSTEM SEOUL에서 내가 느낀 익숙함을 직접 설명해주는 연구도 아니다.다만 한 가지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익숙하다고 해서 반드시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도 하나의 출처에서 온 것은 아니다. 직접 경험한 장면이 있고, 그때 실제로 들었던 음악이 있다. 반대로 당시에는 몰랐다가 몇 년 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문화도 있다.

       

      모두 내게 들어온 시점과 경로가 다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그것들을 떠올리면 서로 다른 조각들이 종종 같은 ‘옛날’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다.어디까지가 그때의 경험이고, 어디부터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 나누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기억의 샘플링

       

      그래서 나는 이 감각을 ‘기억의 샘플링’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정식 심리학 용어는 아니다. SYSTEM SEOUL의 음악을 듣다가 떠올린 하나의 비유다.

       

      음악에서 샘플링은 이미 존재하던 소리의 일부를 가져와 새로운 맥락에 놓는다. 원래는 전혀 다른 곡에 있던 소리들이 한 트랙 안에서 처음 만날 수도 있다. 내가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에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직접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부가 있다. 그때 들었던 음악과 보았던 장면이 있다. 여기에 시간이 흐른 뒤 처음 접한 옛 음악과 영상,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가 들어온다.

       

      각각의 조각에는 저마다의 출처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한곳에 모이고 나면 하나의 ‘내가 아는 옛날’이 된다. 그 옛날을 이루는 조각 하나하나는 실제로 내가 접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 조각들이 모두 동시에 존재했던 하나의 과거가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가져온 소리가 한 곡 안에서 만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에 들어온 기억 역시 한 사람 안에서 같은 과거처럼 놓일 수 있다. SYSTEM SEOUL이 여러 소리를 다시 배열하듯, 나 역시 서로 다른 경로로 들어온 기억을 하나의 과거로 묶어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일이 SYSTEM SEOUL에서만 일어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음악도, 레트로라는 방식도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SYSTEM SEOUL을 듣다 보니 평소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기억의 출처를 한 번 더 보게 됐다.

       

      음악에는 원곡이 있다. 궁금하면 어느 곡에서 소리가 왔는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억은 그보다 조금 복잡하다.

       


      원곡을 찾다가

       

      처음에는 음악의 출처를 찾고 있었다. 어떤 곡에서 무엇을 가져왔는지 알게 되면 내가 느낀 익숙함도 설명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곡을 찾아갈수록 오히려 내 기억의 출처가 더 궁금해졌다.

       

      직접 겪은 것, 시간이 흐른 뒤 처음 알게 된 것, 다른 사람과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진 것. 머릿속에서는 비슷한 과거를 가리키고 있지만, 처음부터 같은 곳에서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억에도 원곡이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과거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여러 시기에, 여러 경로로 접한 것들이 모여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이전보다 조금 더 의식하게 됐다.

       

      아마 다음에도 서울역에 도착하면 「너」를 재생할 것이다. 예전처럼 그냥 노래를 들을 것이다. 다만 가끔은, 지금 떠오른 장면을 내가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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