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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마티 슈프림>은 흔한 전기영화도,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도 아니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마티가 세계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벌이는 사고들, 그리고 그 사고가 또 다른 사고로 꼬리를 무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조쉬 사프디 감독은 Dazed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꿈꾸는 자의 여정'이라 말했다.
<마티 슈프림>은 주인공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따라서 관객이 '마티 마우저'라는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영화 전체의 감상을 좌우할 것이다. 마티는 확실히 사기꾼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남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능변가이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사업가적 면모도 갖추고 있다. 주변 인물들 역시 그가 사기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속아 넘어가 주거나 도움을 준다. 영화는 밉지만 어딘가 응원하게 되는 마티의 양가적 매력을 동력 삼아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간다. 문제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 감정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정의 랠리가 끊긴 순간

영화는 마티가 벌이는 사고들을 짧은 호흡으로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으로 배치한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전개는 분명 이 영화의 강점이다. 하지만, 이 연출 방식은 관객이 마티에게 '밉지만 응원하는' 양가감정을 느낀다는 전제 위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영화 속 마티는 꿈을 위해 주변인들을 끊임없이 등쳐먹지만 그에 상응하는 인간적 균열이나 죄책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마티라는 인물을 포장하지 않는 선택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그를 향한 애증 자체가 형성되지 않도록 만든다. 따라서 주변 인물들이 그에게 느끼는 양가적 매력과 내가 관객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격차만 벌어지게 된다. 몰입할 인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사건이 꼬여 가니 다른 관객에게는 쾌감을 선사했던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가 나에게는 다소 피로하게 다가온다. 물론 마티의 폭주가 만들어내는 쾌감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이를 지탱할 감정적 동력이 나에게는 없었던 셈이다.
끝까지 마티의 영화
영화는 엔도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후 마티가 자신의 아이를 처음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장면은 새로운 시작으로도, 실패로도 읽을 수 있는 이중적인 순간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결국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과 꿈만이 시간의 제약을 초월하기에 마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끝내기 전까지는 사랑에 전념할 수 없었다고 언급한다. 감독에 따르면 승리 뒤에는 허무함과 '이게 전부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누가 이 꿈을 믿어줬는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고 한다. 실제로 엔도는 수천만 일본 국민을 등에 업은 선수였던 반면, 마티의 곁에는 레이첼 한 사람뿐이다. 감독은 이 대비를 미국식 개인주의에 대한 은유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영화는 앞에서 언급한 마티의 심경 변화나 행동의 변화를 거의 비추지 않는다. 레이첼을 내내 개차반으로 대해놓고 아이를 마주하는 순간 사랑으로 귀결되는 전개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사이를 메워줄 마티의 변화가 영화 안에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아이는 마티가 영화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책임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그 내면의 변화가 다가오지 않으니 그가 흘리는 눈물조차 승리와 상실이 뒤섞인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처럼 보인다. 엔도를 꺾은 뒤에야 비로소 레이첼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기쁨을 느낀다는 전제 자체도 퍽 이기적이다. 끝까지 철저히 마티 중심적인 이 태도야말로 내가 마지막까지 느낀 불쾌함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A24 팟캐스트에서 원래는 신발 가게 사장으로 성공한 마티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 뒤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결말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최종본에서 그대로 유지된 것은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라는 노래 하나다. 노래 가사와 함께 엔딩을 바라보면 감독 역시 이 결말을 단순히 사랑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맺으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Welcome to your life
삶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There's no turning back
되돌아갈 길은 없어요
Even while we sleep
설령 당신이 잠드는 동안에도
We will find you
우리는 당신을 찾아낼 거예요
Acting on your best behaviour
당신이 착한 사람인 척 연기하여도
Turn your back on mother nature
대자연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 되길 원하니까요

<마티 슈프림>은 주인공의 이기심조차 포장하지 않는 솔직한 영화다. 그 안에서 마티의 욕망을 성공과 실패 어느 한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을 만큼 입체적으로 그린다.
다만 그 솔직함이 나에겐 닿지 않았다. 마티에게 몰입하지 못한 탓에 그의 승리도 아이와의 만남도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이 영화가 나에게 남긴 것은 질문 하나다. 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이토록 가감 없이 드러낼 때 관객은 그로부터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