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자 동시에 한 세대에 번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안, 초조, 긴장,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 책은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나의 질환이 독서에 이런 방향으로 도움이 되다니 역시 뭐든 두면 쓸모가 있다. 물건이 아니라 감정과 상태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위에서 말한 집단 신경증에 대한 부분에서는 쉽게 흐르지 못했다. 계엄 당시에 우울과 부안을 앓던 사람들이 증상 악화를 호소한 것 말고는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에서 책의 내용을 연관 짓기가 어려웠다.
현대 집단 신경증에 대한 질문
책에서 현대의 집단 신경증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이 나온다.
1. 어차피 원자폭탄이 터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테니,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2. 인간이란 결국 외적, 내적 힘과 권력에 휘둘리는 놀잇감에 불과하다고 믿나요?
3. 그저 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4.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유용해 보이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나요?
순서대로 임시론적 삶의 태도, 숙명론적 인생관, 집단주의적 사고에 대한 질문, 그리고 마지막은 광신주의에 대한 함정 질문이다. 잘 와닿지 않아 반복해서 곱씹다 보니 현대사회가 겹쳐 보였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각각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현재를 즐기는 욜로, 티끌 모아 티끌이라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젊은 층, 옆 나라의 동조압력 사회 분위기, 내가 아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올렸다.
집단 신경증에 대한 세가지 측면
책을 더 읽다 보면 집단 신경증의 세 가지 측면을 언급하다. 우울증, 공격성 그리고 중독. 우울증은 나를 향하고 공격성은 상대를 향하는데 이것들은 중독을 동반한다.
청소년기의 자아실현과 자기 해석에 대한 집착으로 이러한 집단 신경증을 앓기도 한다는데 이 관점이 새로웠다. 가치를 절대화하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165쪽)는 여기서도 적용되는 말 같았다. 추구하는데 얻지 못하니 무엇을 위한 시간이고 노력이고 어려움인가 답을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게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생겨난 어떠한 상태, 말하자면 공허처럼 느껴졌다.
맨 마지막 장에서 빅터가 지인 아들의 사례를 잠깐 언급한다. 마약에 빠지고 범죄 집단에 연루될 위기를 처한 젊은이에게 지금의 만남이 방향을 돌릴 계기가 될지 먼 훗날 이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게 될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가 아닌 '우리가 삶에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의 삶으로 응답했다."
집단 신경증의 원인이 어떻고 어떤 측면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시각, 내가 지금 삶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알고서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아우슈비츠에서는 사실상 모든 신경증 증상이 사라졌어요."
어떤 운명이 닥쳐오더라도, 그런 운명에 대한 이런저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는 결코 상실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0쪽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홀로코스트를 겪은 학자와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독자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그의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지식도 부족하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할 때는 조금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
개인은 시대와 사회와 집단 혹은 공동체의 영향을 받고 본인의 선택 같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가치판단과 의미 부여를 하며 자신의 삶을 대한다. 그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옳은 것인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고, 목적에 매몰되어 잘못된 길에 들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삶이란 무엇일까'가 아니라 그렇다면 '삶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였다.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삶은 이미 주어져있고,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삶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별개로 나의 지금이 삶이란 것에 답이 될 수도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더라도 마음가짐을 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상실되지 않는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