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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평온하고 안정적이지만 매일이 똑같은 삶과, 조금은 불안정해도 온몸이 전율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삶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후자다. 나는 잊지 못하는 한 순간만으로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영화 <척의 일생(The Life of Chuck)>도 그에 동의하는듯하다. 우리의 삶을 우주적 시간 속에 놓고 바라본다면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짧은 생애 끝에 우리는 무엇을 마지막까지 붙잡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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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영화에서 처음 마주하는 건 세계의 종말이다. 인터넷이 끊기고, 지진이 일어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재난이 수시로 일어나는 와중에 도시 곳곳에 정체불명의 광고판이 걸린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세상이 끝나고 있는데 한 남자에게 감사하는 광고가 나타나는 것이다. 짓궂은 장난이라기엔 어딘가 기묘한 이야기에 관객은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은 영화의 영적인 면을 드러낸다. 무너지고 있던 것은 지구가 아니었다. 뇌종양으로 죽어가던 39세 남성 찰스 '척' 크란츠의 무의식 속 세계를 관객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의 종말은 곧 한 사람의 우주의 종말로, "39년 동안 고마웠어요"라는 광고판은, 척의 내면 우주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이었다.


영화는 이 반전을 기점으로 척의 삶을 역순으로 펼쳐 보인다. 평범한 회계사였던 척 크란츠는 사실 로맨틱한 춤꾼이었다. 길거리 드럼 비트에 홀린 듯 멈춰 서서 즉흥으로 강렬한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이다. 그는 혼자 춤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인을 리드한다. 춤은 모든 걸 해체하고 두 남녀를 신사와 숙녀로 만들어주는 마법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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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곳곳에서 언급되는 것은 ‘코스믹 캘린더(Cosmic Calendar)’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대중에게 소개한 사고실험 중 하나이다.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단 1년으로 압축한다면, 그 거대한 달력에서 인류가 등장하는 시점은 12월 31일 마지막 몇 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월트 휘트먼의 시구, “나는 거대하다, 나는 수많은 존재를 품고 있다 (I contain multitudes)” 또한 영화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척의 일생>은 우주 속 인간이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몇 초 간의 삶에 얼마나 무한한 것을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찬가이다.


영화의 3막이 시작되며 관객은 척이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척에게 춤의 매력을 알려준 것은 할머니였다. 학교에서도 척은 함께 춤추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반면 할아버지는 척에게 댄서가 되는 대신 수학적 재능을 살리라고 타이른다. 그러나 할아버지 역시 단순히 실용적인 이유로 척에게 회계사를 권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수학은 거짓말하지 않으며,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임을 강조한다. 즉 할머니는 소우주의 낭만을, 할아버지는 대우주의 질서를 척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척은 늘 가슴에 낭만을 품은 채 삶에 필요한 일을 살아냈던 사람으로 자라난다. 그는 대우주 속에서 소우주를 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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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척의 마지막 기억 속 가장 깊은 곳까지 남아 있던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된다. 놀랍게도 함께 춤을 추었던 여자도 아니고, 거리의 드러머도 아니다. 척이 끝까지 품고 있던 것은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너는 우주를 품을 수 있단다"라는 말을 들은 직후, 그의 눈에 담겼던 것들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지나가듯 보았던 옆반 선생님들이 그의 기억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세계관이 확장된 순간 척의 세계에는 지워지지 않는 여운이 남았다.


나는 어렸을 때 혼자 찾아냈던 고요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손에 쥐었던 라이언킹 영어 동화책, 막 떠오른 노란빛의 햇빛, 꽃무늬 소파. 그리고 바닥에서 책들을 펼쳐 놓고 책을 골라낸 후 소파로 향해 앉았던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충만했던 순간들이다. <척의 인생>을 보면 문득 낯선 타인들이 궁금해진다. 각자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세상이 달라 보였던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였고, 처음으로 기쁨을 느꼈던 몰입의 순간은 언제였을지 말이다. 무엇이 그 사람의 우주를 넓혀주고 채워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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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족들은 39살이라는 나이에 삶을 마감한 척을 위해 비통해한다. 그러나 척의 일생을 따라가며 느꼈던 건 삶의 유한함을 일찍 자각하고, 자신이 우주를 품을 수 있음을 알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충분히 눈에 담으며 살았다면 그 삶은 길이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쓴 구절은 춤이었고, 수학이었고, 할머니에게 배운 춤으로 한 여자를 숙녀로 만들어준 어느 저녁이었다.


언젠가 나의 우주도 막을 내릴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기억을 가장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을까.

 

 


<척의 일생>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추천하는 영화들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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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의 일생>이 삶의 마지막에 남는 기억을 이야기한다면, <이터널 선샤인>은 우리가 왜 그 기억을 끝내 놓지 못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사랑과 기억, 후회와 선택을 아름답고도 쓸쓸하게 그려낸 영화로, 사랑이 만들어낸 것들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월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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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순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준다. 그 외에도 찰나의 순간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오래 붙들어 주는지 그려내는 성장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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