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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운이 좋았던’ 상록구청 농구팀은 부전승으로 대회에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무려 48대 1. 그 무수한 확률을 뚫고 어쩌다가, 우연히, 겨우 이뤄낸 성취. 어떤 이는 그 부전승이 그동안 성과 하나 없었던 농구팀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도 말한다. 실제로 부전승은 극 중에서 새로운 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실낱같은 확률로 인해 누군가는 그동안 등지고 살았던, 지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고통스러운 순간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어쩌다가’, ‘우연히’라는 경우의 수가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만약 그때 내가,

그때 내가 속초에 가는 걸 말렸더라면

바다에 가지 않고 훈련을 하러 갔더라면

내가 수영할 줄 알았더라면

호루라기를 더 세게 불었더라면

더 큰 목소리로 도움 요청을 했더라면

너희들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대개 스포츠 장르가 그렇듯 농구에도 우승을 위한 수만 가지의 전략이 존재한다. 선수들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변수를 헤아리고 그중 가장 높은 성공 확률의 전술을 택한다. 소설 <구의 증명>에서는 노마라는 아이의 죽음에 얽힌 여러 변수를 써 내려간 대목이 등장한다.

 

 

뭘 어떻게 했어야 했나. 노마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고 노마는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어렸고 노마는 죽지 않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데 그런데도 왜 죽었을까.

 

노마의 죽음을 제일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고도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야 했다.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갓길 없는 이차선 도로에서 트럭이 팔십 킬로미터로 달렸고 따로 인도가 없었고 주변이 어두웠고 한겨울이라 길이 얼어 미끄러웠고 늦은 시간이라 트럭 기사는 피곤했고 노마가 너무 작고 가벼웠다는 그런 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어째서 그때 트럭이 달려왔고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고 노마는 자전거를 탔는지. 왜 노마인지. 어째서 죽어야 했는지. 신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이유가.

 

- 최진영, 「구의 증명」 中

 

 

유감스럽게도 우리 머릿속에 살고 있는 변수는 양면성을 띠지 않는다. 이는 정답 혹은 오답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애초에 명확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명제로부터 파생된 생각의 흐름은 죄책감을 경유하여 갈수록 그 몸집을 부풀린다. 무한대로 자라나는 가능성은 잔인한 폭력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너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단지 그뿐이라고. 어쩌면 종우가 지난 15년의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들었을 말. 기존 이름은 지워진 채 ‘생존자’라는 이름만이 마치 낙인의 꼬리표처럼 지독하게 들러붙었을 시간. 아무리 힘주어 적어 보아도 파도가 한 번 휩쓸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종우라는 이름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만 번 지워졌다.


처음으로 팀명과 팀 구호라는 걸 정하기까지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아이가 수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학생에게 관심 없던 선생님이 처음으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피씨방에 가는 것보다 우승 전략을 짜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기까지

수십 번의 말도 안 되는 확률과

수만 번의 뒤집는 시도

그 실낱같은 가능성


모든 ‘보임’과 ‘안 보임’의 상태는 극의 시작과 말미에 서로 뒤바뀐다. 이러한 안 보임에서 보임의 단계로 전환되는 각 과정은 작품 내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수현이가 귀신인 승우, 지훈, 다인을 볼 수 있음에서 보지 못함으로, 상태가 수현을 인식하지 못하던 단계에서 그를 또렷이 마주하게 되는 변화가 있다. (물론 이 시점에서는 승우, 지훈, 다인은 이미 성불한 상태지만) 수현이 더 이상 귀신 형들을 ‘보지 못하는’ 시점에 상태가 수현에게 이제 네가 ‘잘 보인다’고 말해주며 엇갈리는 교차 지점 또한 흥미롭다. 이 두 가지 상태는 이분법적 성질을 띠고 있으며 외부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농구는 골이 들어가거나 안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래서 기분이 좋거나 안 좋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삶에는 무리수처럼 예측하지 못할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한동안 풀지 못했던,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거라 스스로 단정 지은 난관들. 마치 수현이가 풀다가 막혔던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이는 삶의 궤적 곳곳에 숨어있기에 차마 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수학 문제와 달리 삶의 변수 앞에서는 해답을 구해내는 것보다 그 지난한 풀이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종우와 상록구청 농구단 아이들이 선택한 것은 완벽한 정답이 아닌, 실패를 무릅쓴 움직임이었다.

 

여전히 수현이는 농구가 어려울 것이며, 종우도 학생들에게 못 미더운 코치겠지만, 그럼에도 시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골을 넣지 못했더라도 다시 한번 더 농구공을 던져보려는 마음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공연을 관람한 모든 관객이 이 지점을 느꼈을 거라 감히 예상해 본다. 다소 직관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조금 유치할 수도 있는 가사와 대사에 관객의 심장이 여전히 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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