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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막연하게 추상적인 단어 하나. 이 단어 하나가 실체를 형성하는 시점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저 멀리 잊고 살던 동창 하나가 프로필사진을 웨딩사진으로 바꾼다던지. 건너 건너 “그거 알아?”로 시작해 “걔 결혼한대”로 말문을 이어가다 “아 진짜?”로 답하는 짧은 대화가 오간다던지. 우리는 그러한 반복 끝에 결혼과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 사랑하는 그녀가(또는 그) 존재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결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꿈에 나왔다. 그 꿈은 나의 임종에 관한 꿈이었다.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고, 그녀는 그 옆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를 비밀처럼 속삭였다. 나는 웃었고 너는 웃으며 울었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을 듯 말 듯, 너는 눈물을 쏟을 듯 말 듯 그 꿈에서 깼다. 슬픈 꿈인데 기쁜 꿈이었다.

 

나는 꿈을 신뢰한다. 의식에는 여러 방어기제, 타협이 섞이기 마련이지만, 무의식에는 그런 겉치레가 사라진다. 나는 너에게 사랑받기 위해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너와 결혼하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지만. 한편으로는 전세자금과 결혼식 비용을 계산하고. 너의 부모님이 나를 허락하실까, 그 자리에서 흔쾌히를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그러한 걱정들이 산재했고 상기됐다. 지금으로서는 별 볼 일 없는 꼴에, 별 볼 일 있는 진심을 좇고자 하는 욕망. 그러한 욕망에서 내 꿈은 야기됐는지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 꿈에서 깼다. 그리고 멍하니 선풍기를 바라봤다. 그냥 그거면 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지막까지 너와 지금처럼일 수 있다면, 그냥 그거면 됐다. 그때 내가 누운 병실이 특실인지 12인실인지. 그때 네가 입은 옷이 루이비통인지 유니클로인지는 중요치 않다. 나는 그냥, 너와 지금처럼 그때까지. 두 손을 꼭 잡고 별 거 아닌 이야기에 웃을 수 있다면. 그거면 된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택해야 할 수십 수백 가지 세속적 이유보다도 그러한 마음 하나. 그냥 그거면 된다.

 

그렇게 보면 많은 것들이 중요치 않아진다. 정확히는 나에게 중요한 것들 대다수가 중요치 않아진다. 중요한 건, 그녀와 그녀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로 초점이 좁혀진다. 나는 흡연이 좋지만 너는 금연이 좋기에 나 또한 금연이 좋다. 나는 전화가 좋지만 너는 문자가 좋기에 나 또한 문자가 좋다. 나는 자동차여행이 좋지만 너는 기차여행이 좋기에 나 또한 기차여행이 좋다.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떠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러 고집부리지 않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좋아함을 찾아간다. 나는 예기치 못한 좋아함이 좋고 너의 예상되는 좋아함이 좋다.

 

이미 너는 냉소적인 나를 때때로 감성적으로 만들었고. 주장이 강한 나를 때때로 옅어지게 만들었다. 육두문자만 내뱉던 입에서 사랑해라는 말을 나오게 했다. 풋풋하던 때를 지나 눅눅해질 때가 되었음에도, 너로부터 변해가는 내가 좋고 너는 그냥 좋다.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보다 견고하게 좋다.

 

달콤한 이야기만 전개되지는 않을 테지만, 이따금 나는 고집을 부릴 테지만, 예기치 못한 환경 변화가 있을 테지만, 그래서 네가 상처를 받을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세상에 난무하는 변수들로부터 너와 영원하고 싶다는 허상. 그러한 허상으로부터 결혼이라는 허영을 품는다. 아이를 낳고 싶어서도, 효도를 하고 싶어서도, 내조를 원해서도, 안정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지금처럼 그때까지. 그뿐일 뿐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결혼이 하고 싶다. 너랑.

 

이게 내가 내린 사랑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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