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은 마음을 간질이는 단어다. 가슴 부풀어 오를 듯한 이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올라, 끝내 '좋아해'를 도화선 삼아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터져 나온 사랑의 언어들을 필름에 녹여내는 것, 이것이 <여름의 카메라>가 사랑을 조망하는 방식이다.
시놉시스
“너를 보면 셔터 소리가 들려”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던 ‘여름’. 하지만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를 놓게 된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부 에이스 ‘연우’를 보고 첫눈에 반한 ‘여름’은 홀린 듯 아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여름’은 ‘연우’에게 사진을 주기 위해 필름을 현상하고, 그 속에 아빠가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을 통해 숨겨왔던 비밀을 보게 되는데…
죽음

영화는 여름의 첫사랑과 아빠의 죽음이라는 두 갈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병렬적으로 흐르던 두 서사는 시간의 흐름이란 형태에 어우러지고, 빈틈없이 포개진 두 이야기의 수렴점은 결국 여름이라는 풍경이다.
연우와의 사랑이 여름에게 남긴 것은 결코 설렘만이 아니다. 그 사랑은 여름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상실을 마주하게 했고, 아빠의 죽음을 여름의 삶 속으로 들여보냈다. 동시에 첫사랑은 서툴렀고, 이별은 갑작스러웠으며, 헤어짐의 가시 공은 돌덩이가 되어 마음을 짓이겼다. 연우는 여름에게 있어서 반드시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했던 경험은 이후의 발을 내디딜 토양이 된다. 사랑이 죽음을 상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애도하는 이야기이며, 애도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눈이 시린 녹음으로 빼곡한 여름은 성장의 이미지와 분명히 어울린다.
동행

아빠의 옛 연인이자 현 먼 동네 미용실 사장인 두마루는 여름과 아빠 사이라는 한 세대를 매개한다. 연우를 계기로 눌린 셔터가 우연하고 기묘한 만남을 불러왔고, 그 만남은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잇는 연대가 되었다.
여름이 힘들 적이면 마루를 찾아왔던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마루를 향한 여름의 발걸음은 아빠의 옛 모습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배낭의 짐을 나누는 여정이 되었다.
배낭, 여름의 빨간 배낭에는 죽음의 무게가 응축되어 있었다. 아빠와의 추억, 떠나버린 아빠를 놓지 못하는 미련, 모든 것이 엉겨 붙어 어린 여름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루는 여름의 등 뒤에서 굳어버린 상실의 잔여물을 융해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이는 마루 역시 동일한 상실의 궤도를 지나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이 아빠를 잃었다면, 마루는 사랑하는 이와 이별했다. 서로가 겪은 상실은 같은 결의 상흔을 남겼으며, 이를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걸음을 보듬는 동행으로 나아간다.
여름, 사랑

마음을 내어 주는 모든 행위에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 대상이 여름이라는 계절이든, 카메라라는 취미이든, 혹은 사람이든 간에. 분명 이유 없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여름의 카메라>가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들을 특별한 존재로 다루지 않음에 있다.
누군가는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을 한다. 이들의 사랑은 예외의 범주이며, 고리타분한 가치관을 깨부수기 위한 대부분의 어느 영화는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갈등으로 전개된다. 이는 현실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언제나 설명되어야 하거나 극복해야 할 문제로 치환한다.
이에 <여름의 카메라>는 평범함이라는 렌즈를 제안한다. 이 영화 속의 사랑하는 이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대상을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이윽고 성장하는 평범한 개인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당연함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여름의 카메라>는 사랑하는 이들이 동등한 시간과 계절을 살아가는 구성원임을 담아낸다.
사랑을 조망하는 렌즈는

©노유나 에디터
'사랑하는 이들'에 대입할 말을 생각해 보자.
사랑은 본래 설명보다 감각에 가까운 감정이다.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에게 시선이 머물고, 그 대상을 더 알고 싶어지며, 사소한 안부와 표정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 영화는 그 감정을 특별한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일 뿐이다. 거창한 선언이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변론도 필요하지 않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는 그 마음을 살아내는 방향을 택한다. 그들의 주변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사랑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한 장면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렌즈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사랑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 이해하기 위해 애쓰기 이전에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 영화는 그런 세계를 잠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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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카메라>에서는 아날로그적 청춘의 문법을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초록, 여름, 필름 카메라, 고등학교, 첫사랑, 이어폰.
클리셰적이기도 하며 이상적이기도 한 이 청춘은, 사랑이라는 세계관으로 그려진 유토피아를 연상케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유토피아 안에서 영화와 같은 평온함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감독의 바람이었을까?
그렇다면 나 역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여름을 응원한다.
여름은 원래 빛나는 사람들의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