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얄궂은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에 눈이 부시다가도, 습한 공기에 짜증이 치솟고, 쏟아지는 비에 마음이 씻겨 내려가기도 한다. 그런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영화들이 있다. 계절 특유의 공기를 담은 작품들은 누군가의 기억 속 각자의 여름으로 남는다.
시원한 물의 청량함부터, 끈적하게 들러붙는 듯한 욕망까지. 저마다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여름을 다양한 온도로 감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더 웨이, 웨이 백 (2013) – 냇 팩슨
가족 여행으로 억지로 끌려온 해변, 14살 소년 던컨의 여름은 답답하기만 하다. 늘 외롭고 겉돌던 던컨은 우연히 도피처처럼 찾아간 워터파크에서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어른, 오웬을 만나게 된다.
그를 따라 워터파크에서 일하며 조금씩 세상과 마주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변화해 나가는 과정은 힘차게 내리쬐는 여름날의 햇볕만큼이나 눈부시다.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 과정은 그 자체로 눈부신 해방감을 선물한다.
스탠 바이 미 (1986) – 롭 라이너
여름의 무더움은 활기차지만 왜인지 모르게 언제나 묘한 상실감을 가져다 준다. 죽음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정을 그리는 이 영화는 시체를 찾기 위해 기찻길을 따라 걷는 네 소년의 발걸음을 좇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기찻길. 그리고, 매미 소리 가득한 숲속. 모험을 떠나는 네 아이들의 모습은 여름의 공기가 더해져 더욱 짙어진다.
땀범벅이 된 채 길을 나아가는 소년들의 모습은 한여름의 잔열과 얽히며, 우리 안의 아득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리코리쉬 피자 (2021) – 폴 토마스 앤더슨
‘리코리쉬 피자’는 자신감이 넘치는 개리와 불안한 20대를 지나는 알라나의 뜨겁고도 몽글몽글한 여름날을 다룬다.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쨍한 태양 아래. 영화는 그 열기 속에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름의 날씨처럼 두 사람의 감정선은 종잡을 수 없고 변덕스럽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를 질주하는 인물들의 뜀박질은 풋풋한 에너지를 그대로 전해준다.
‘리코리쉬 피자’는 불확실한 청춘과 어린 사랑이 가져다 주는 모호한 감정이 만들어내는 여름의 텐션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레드 로켓 (2021) – 션 베이커
여름의 에너지와 청량함을 표현하는 수많은 작품 사이에서, '레드 로켓'은 살갗에 들러붙는 듯한 여름의 끈적함을 느끼게 해준다. 션 베이커가 그 특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전직 포르노 스타 마이키의 삶은 여름의 지독한 땀 냄새로 찌들어 있다.
도넛에 발린 설탕처럼, 얄팍하지만 달짝지근한 과거의 영광을 계속해서 되찾으려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해충 박멸기에 대가리를 들이미는 여름철의 벌레와 닮은 듯도 하다.
불쾌하게 찐득이는 인물의 일상이 눅눅한 여름 공기와 맞물리며, 끈적거리는 한여름의 민낯과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챌린저스 (2024) – 루카 구아다니노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려내는 여름은 늘 감각적이지만, ‘챌린저스’의 코트 위 여름은 그야말로 작열한다.
부상으로 코트를 떠난 테니스 천재 타시와 슬럼프에 빠진 챔피언 아트, 그리고 이들 앞에 나타난 과거의 라이벌 패트릭. ‘챌린저스’는 코트 위에서 재회한 세 인물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뜨겁고도 팽팽하게 조여 나간다.
태양 빛이 내리쬐는 테니스 코트. 그 열기를 품고 속도 있게 튕겨지는 공을 따라 인물들의 감정과 승부욕이 맹렬하게 부딪힌다. 피부 위로 흐르는 굵은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는 물리적인 더위를 넘어, 인물들 내면의 질투와 욕망을 끈적하고도 섹시하게 뿜어낸다.
'챌린저스'는 이렇듯, 여름의 열기라는 매개를 통해 테니스 그리고 인물들의 열성을 표현해내었다.
이렇듯 스크린 속 여름은 단순히 계절을 나타내는 배경을 넘어, 극의 상황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이 투영되는 또 다른 중요한 무대이다. 물보라를 맞으며 성장하고, 아지랑이 속을 달리고, 때로는 끈적한 욕망에 몸을 던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던 각자의 여름을 다시금 감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