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지된 최면 같은 이야기
나는 나에게 금지된 것을 소망한 적이 있는가? 그것을 상상한 적은 있더라도 이루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나가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을 쓰기 전부터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가 금지된 것을 소망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쪽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라는 책을 접한 것은 수많은 인터넷의 글과 서평들이었던 것 같다. '여성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소설'이라는 감상으로 온갖 sns를 떠돌던 것을 몇 번 정도 넘기고 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꽤 많은 한국 소설을 접하고 읽어왔으면서도 이번에 이 책을 처음으로 양귀자의 문체를 접하게 된 것도 맞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왜인지 모를 반감이 들었다. 나는 여성이면서도, 사회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을 두고, 관련 기사를 몇 번이나 읽고 지인들에게 공유하고, 청원이 올라오면 참여하는 여성이면서도 반감이 들었다. 마치 금지된 이야기를 아주 꼼꼼하게 읽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강민주의 그 대담함(대담함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의 성격을 타인이 봤을 때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므로 쓴다)에 빠져들어서 마치 내가 백승하가 된 것처럼 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녀의 가르침이 마치 세상의 이치라는 듯 그녀의 행동과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어느 여성의 표정으로든 드러날 ' '
강민주의 '백승하 납치 사건'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 전에, 나는 강민주의 외형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백승하의 외형 그리고 황남기의 외형, 김인수의 외형은 책을 읽는 내내 상상이 잘 되었다. 백승하는 강민주의 시점에서 잘 묘사된 만큼 선이 굵은 중년 배우를 생각했다. 백승하의 말투에서 얻은 정보 또한 있을 것이다. 황남기는 소설 내 힌트가 있긴 했지만 아주 덩치가 크고 감자 같이 생긴 청년을 생각했으며, 김인수는 조금 마르고 덮은 머리와 무쌍의 눈을 가진 남자로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명, 강민주의 외형은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이 강민주의 시점에서 쓰인 소설이기 때문은 아니고, 강민주의 외형을 묘사해 줄 남성이 없어서도 아닌 것 같다고 소설을 끝내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그녀는 소설 내 진형준 평론가의 <여성성의 신화적 임재>에도 표현되어 있듯, 수많은 여성의 집합체다. 어쩌면 나의 모습이 한 꼬집 정도 들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한 번 쯤 누구나, 무엇에 억압되어 본 입장의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금지된 행동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까. 강민주의 얼굴이 아닌 그녀가 납치를 행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바뀌는 옷과 머리 스타일 등만 소설에 쓰인 것을 봤을 때,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여성이든 넣어볼 수 있었다. 무슨 단어를 넣어도 이해될 문장처럼.
자 다시, 강민주의 납치 사건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이다. 이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될 지 몰랐을 시점에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이 질문의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차피 강민주의 계획은 금지된 계획이었다. 어떤 독자는 아무리 성 차별의 중심에 있는 여성이어도 범죄는 저지르면 안 된다고 말할까? 그렇다면 지금 어딘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왜 범죄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가? 이 이야기는 책일 뿐이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저것과 같은 납치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드물다.
# 다양한 남성들과다양한 권력
이번에는 소설 내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먼저 백승하. 강민주가 백승하를 납치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연민(이 단어 또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비슷한 단어를 찾지 못했으므로)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백승하가 정말 남성에게 편력되어 있는 이 사회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을까? 알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왜인지 온전히는 알지 못했을 것 같다. 그 납치사건의 결말에서 끝을 맞이한 사람은 결국 강민주였으니까. 강민주는 차별과 금지된 것의 이행, 완성의 과정에서 아무리 목숨 또한 금지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백승하와 황남기도 알게 되었을까? 오로지 강민주만 자신이 죽음으로써 금지된 것을 이행하는 과정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기에 알 수 있었던 것, 본인이 느꼈던 시점을 시작으로 파고 들었기에 알 수 있는 점들이 강민주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강민주에게 목숨을 바치듯 헌신적이었던 황남기와 강민주와 연극을 하며 그녀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지게 된 백승하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백승하라는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사랑하는 여성들 또한 그에게 이러한 문제점을 설명해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황남기. 황남기에 대한 강민주의 묘사와 황남기의 행동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헌신적'이라는 것이었다. 황남기는 강민주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다. 강민주가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꿇고, 강민주의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뭐든 행하는 마치 신하와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백승하를 납치하고 난 후 중반까지도 황남기는 강민주 앞에서 스스로(이성)을 잃은 채로 울기까지 하면서 강민주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강민주 또한 그가 자신에게 사랑이나 존경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것을 활용했다. 백승하와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게 했고, 백승하를 납치한 후 세상에 정보를 하나씩 흘리게 했다. 그렇다면 이쯤 하나의 의문이 든다. 황남기가 정말 강민주를 사랑했을까? 사랑해서 백승하와 강민주 사이를 염려하고, 집착했으며 끝내 강민주에게 총을 쏴 그녀를 죽였을까? 그걸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황남기는 강민주를 걱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강민주를 걱정하는, 강민주를 사랑하는 듯한 자신을 걱정했다. 강민주가 다른 남자(백승하)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이 아는 강민주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집'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까. 황남기는 강민주를 죽이고 공범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을 때 강민주를 위해 그녀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에 응하는 편지까지 쓴다. 그 편지의 전문을 읽으면서 나는 몸 어딘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온통 강민주를 위해 그녀를 살해했다고 말하는 문장 사이로 왜인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황남기가 강민주를 욕망하고 걱정하게 된 것 또한 한 번도 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이였기에 할 수 있는 행위 같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인수. 강민주에게 하는 스토커적인 행동들(거절을 한 후에도 지속적인 전화를 걸거나 집을 찾아오는 행동들)을 봤을 때 쉽게 예상 가능한 인물이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김인수에 대해 더 쓰고 싶었으나 쉽게 생각이 나지 않는 이유도 아주 평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남이 자신에게 한 행동과 말만 생각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그 긴 소설이 전개되고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강민주처럼 나 또한 그가 더이상의 문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뒤집혔고, 어느새 강민주가 죽고 김인수는 영웅이 되어있었다. 백승하와 강민주가 연극을 하고, 황남기가 강민주를 죽임으로써 연극이 끝나는 상황에 경찰을 개입시킨 영웅. 연예인을 납치한 납치범의 공범이 납치범을 죽였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연예인을 무사 귀환시킨 영웅.
차별을 경험하고 끊임없이 김인수를 거절해 온 강민주 또한 김인수가 그렇게 치졸한 인간인지 몰랐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인물이 그렇게까지 강민주의 끝을 쫓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 남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의 계획에 차질을 줬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 또한 의도했다기 보다는 너무 깊게 자리잡아 있는 차별이라는 습관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 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러나 모두의 차별을 위해
하지만 양귀자 작가가 오로지 여성에 대한 차별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이 이야기가 강민주의 금지된 것에 대한 계획과 이행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강민주가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금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것이 기억난다. 자신을 금지하던 것을 금지하겠다고 마음 먹고,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게 되면 잠재되어 있던 자신감이 나를 뚫고 올라갈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강민주도 그 과정을 통해 소설 내에서 끊임없이 자만하게 되지 않았는가.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렇게 나를 억압하고 누르던 것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되돌아 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불합리"는 대체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유형무형의 폭력"이 다가왔을 때 도망가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여온 습관과 같은 상황의 잘못이자 그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누군가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들을 금지하기 위해 일어나면 모든 사건과 상황은 '나'의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