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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고, 다운로드하고, 생성까지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아직도 전시를 보러 다닐까?

   

하나의 세상일지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각자 고유하다. 이때 전시는 작품에 구현된 타인의 시야를 관찰하며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전시를 ‘본다’는 것은,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그저 슥슥 넘기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공간을 거닐며 그 세상과 직접 대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5413번 버스에서 내려 예술의 전당 앞 긴 횡단보도를 걷는 동안 우연히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니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읽은 첫 번째 섹션 설명 글의 ‘이 문장’에서, 벌써부터 오늘의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예술은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번 글은 이 말을 남긴 예술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온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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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위의 발레리나 Ballerina on the Bar, 2001, 캔버스에 유채,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눈에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필터를 장착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둥글거리고 풍만해진다. 평범한 사람들도, 우아한 발레리나도, 심지어 아주 성스러운 분들까지도. 그의 세상의 사람들은 날카로운 각선미 따위 없다. 통통한 살들은 층을 이루며 예쁘게 접히고, 모두가 공간을 꽉 채우는 큼지막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다들 주인공 같다.

 

이때 인물들의 뚱뚱한 몸매는 결코 희화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형태는 어떤 대상이든지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화술이다. 이러한 점은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변주’에서 잘 드러난다. 보테로는 역사적인 거장들의 그림을 자신의 작품 안에서 재탄생시켰다.

 

그것은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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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니나, 벨라스케스를 따라 Menina After Velasquez, 캔버스에 유채, 198 X 160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역시, 전시 포스터의 주인공이기도 한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시녀들>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푸른 드레스를 입은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 그림에서 공주는 엄숙하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보테로의 손에서 그녀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그러나 여전히 우아한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그림을 보다 보면,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된 볼륨감에 감탄을 참지 못하게 된다. 특히 공주가 입은 푸른 실크 드레스가 그렇다. 만약 공주한테 악수를 청한다면, 그녀가 내게로 손을 뻗는 순간 부풀어 있는 소매가 하늘하늘하게 날려 퐁신한 바람이 일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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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따라 그린 우르비노 공작 부부(이면화) The Duke and Duchess of Urbino After Piero della Franchesca (Diptych), 1998, 캔버스에 유채, 204 X 177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피에로 델라 프렌체스카를 따라 그린 우르비노 공작 부부> 또한 피에로 델라 프렌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이중 초상>을 보테로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캔버스가 한 쌍을 이루는 이면화이다. 실제로 보면, 얼굴의 울퉁불퉁한 윤곽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마치 정말 살아있는 거인들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전시장의 벽과 액자 그리고 두 인물을 감싸는 하늘색의 바탕이 맞물려, 마치 창문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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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들 Dancers, 2002, 종이에 파스텔, 142 X 118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이후 섹션은 라틴 아메리카, 종교, 정물, 투우, 서커스로 이어진다.

 

총 112점의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그의 그림은 무엇이 담겨 있든 자신의 개성과 동시에 콜롬비아인으로서의 색채를 잃지 않는다. 가족과 축제, 성인들을 그린 그림들은 물론이고 정물 안에서도 콜롬비아 국기를 연상하는 색감을 연출하는 등 콜롬비아에 대한 애국심과 소중한 기억들을 자신만의 따뜻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곡선들로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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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섹션 관람을 마치고 슬슬 피로가 올라올 때 쯤, 여섯 번째 섹션의 연출을 보고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서커스를 주제로 한 보테로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섹션 입구가, 마치 서커스장처럼 연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섹션이지만 그 어느 섹션보다도 기대를 가득 안고 입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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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 위의 광대들 Clowns on the Stilts, 2007, 캔버스에 유채, 186 X 119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그렇게 들어간 서커스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반기는 그림은 <죽마 위의 광대들>이다.

 

이들은 밝고 통통 튀는 복장과 분장을 하고 있지만, 표정은 우스꽝스럽기보다 어딘가 긴장되어 보이기도, 결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서커스장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는 듯하다.

 

또한 이는 본격적인 서커스를 관람하기 전,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가려진 광대들의 노력과 진심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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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타는 곡예사 The Trapeze Artist, 2007, 캔버스에 유채, 178 X 100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곡예사 The handstand, 캔버스에 유채, 2007, 128 X 100cm, © Fernando Botero Foundation

 

 

보테로의 세계 사람들은 중력의 사랑을 받는 이들지만, 그것을 매정하게 거스르는 기술이 정말 뛰어나다. 분명 자세는 아슬아슬한테 평온한 표정 때문에 안정감이 든다. 그렇게 과장되지 않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에, 시선은 그들의 풍만한 몸매와 화려한 묘기에 더 쏠린다.


그렇게 유쾌하고 감각적으로 마무리된 전시를 보고 나와서, 그 긴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며 또 생각했다. 통통하고 풍만한 몸매가 저렇게나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다니.

 

현실 세계가 아니라 보테로의 세계에 살고 싶다. 그렇다면 5월부터 하기로 한 다이어트…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괜히 (보테로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입술을 옹졸하게 모아 보았다.

 

 

 

컬처리스트 명함 임솔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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