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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금세 더워진 날씨에 등 떠밀리듯 옷장을 정리했다.

   

침대 밑 깊숙이 넣어둔 수납 박스를 꺼낸다. 지난 계절의 옷들을 하나씩 들추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5월까지는 봄이라 생각했는데, 스쳐 간 봄의 자리엔 어느새 여름이 그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는 환절기마다 옷 정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다’라며 옷장 앞에서 허비하던 나날이 떠오른다. 막상 하나하나 꺼내 펼쳐보니,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이 좁은 옷장에 어떻게 이 많은 옷이 들어 있었는지 의문마저 든다.


그렇게 한참 옷을 꺼내 늘어놓고, 개고, 다시 쌓아두기를 반복하다가 침대 위로 몸을 던진다.

 

정리는 늘 체력전이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생각한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면, 계절마다 이런 수고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때는 작은 방 하나를 온전히 옷을 위한 공간으로 두고 싶다. 먼지가 내려앉지 않도록 깔끔한 붙박이장이 좋을까, 아니면 옷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행거를 길게 두는 게 나을까.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드레스룸들을 떠올리며 미래의 집을 상상하다가, 집값을 생각하면 꽤 먼 미래가 될 것 같아 이내 그만둔다. 다시 돌아온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난장판이 된 옷가지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좁은 옷장 안을 비워내는 것뿐이다.

 

비워진 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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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학창 시절 쓰던 휴대폰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메신저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문자 메시지는 일정 개수 이상 저장할 수 없었다. 보관함에는 정해진 개수만큼만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고, 보관함이 가득 차면, 가장 오래된 메시지가 자동으로 지워지곤 했다.


아끼는 메시지가 밀려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보관함을 주기적으로 정리해야 했다. 좋아하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가 삭제되지 않도록 애쓰던 기억, 그러다 깜빡 잊고 정리를 하지 못해 메시지가 지워졌을 때 내뱉던 비명까지.


돌이켜보면 그때는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이 분명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매번 고민하며 결정해야 했기 때문일까. 반면 지금은 무엇이든 일단 남겨두고 본다. 옷도, 물건도, 심지어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까지도 마음 한구석으로 미뤄둔다.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중에 정리하지.’라는 말과 함께.


다시 몸을 일으켜 옷더미 사이를 뒤적인다. 몇 해 전 샀지만 두어 번 입은 뒤 꺼내지 않았던 니트 한 벌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는 입겠지’라는 생각으로 매년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옷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언젠가’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 니트를 정리하기로 한다. 니트가 있던 자리만큼의 공간이 비어 보인다. 그 빈자리가 조금은 휑하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옷장이 마치 그 시절의 문자 보관함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낼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좁은 원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탓인지,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옷가지들을 괜스레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이 빈자리는 단순히 무언가가 사라진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이 들어설 자리를 내어준 흔적일지도 모르니까. 언젠가 다시 채워질 것을 알기에, 비워내는 일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만남을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움은 조금 옅어지고, 마음은 비워진 옷장만큼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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