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pexels-fauxels-3183161 2.jpg

 

 

요즘은 누구나 매거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다. 정확히는 누구나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만들 수 있다고 느끼는 시대이다. 계정 하나를 만들고, 이미지를 고르고, 거기에 짧은 문장을 덧붙이는 일만으로도 하나의 매거진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매거진이라는 것이 일정한 자본과 인쇄, 유통의 과정을 전제했던 매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변화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라기보다 매체를 둘러싼 권한 자체가 이동한 결과이다.

 

인스타그램 매거진들은 공통적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누군가의 허락이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채, 개인의 취향과 시선이 거의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난다는 느낌. 잘 정리된 기사나 완성도 높은 브랜드 콘텐츠보다, 오히려 조금은 거칠고 덜 정제된 이미지와 문장들이 더 ‘진짜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솔직함’이라고 부르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지금의 매거진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 번쯤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이 매거진들은 정말로 솔직하기 때문에 자유로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에 솔직하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매거진을 만드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취향은 직접적인 언어보다 훨씬 우회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자기소개 방식이다.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이미지를 공유하는지, 어떤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지와 같은 선택들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매거진은 단순한 콘텐츠의 집합이라기보다, 하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매체에 가깝다.


문제는 취향이 외부로 드러나는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완전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매거진은 만들어지는 동시에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보여진다는 사실은 곧 타인의 반응 가능성을 포함한다.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이 공유되는지, 어떤 문장이 더 많이 읽히는지, 어떤 편집이 더 좋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한 감각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 감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후의 선택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매거진은 흥미로운 긴장을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려하게 만드는 구조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매거진을 만들지만, 그 취향은 점점 더 타인의 시선과 반응을 통과하며 조정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 사이의 간극은 아주 미묘하게, 반복적으로 수정된다.

 

그래서 지금의 매거진은 단순히 자유로운 매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상태에 있다. 그것은 분명 전보다 훨씬 낮은 진입 장벽을 가지고, 개인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들과 반응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와 조정 사이를 오가고, 혹은 그 둘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매거진을 만드는 이유는 이 모든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취향을 드러내는 일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지나치지 못했는지를 기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완전히 순수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더라도, 그 안에는 분명 반복적으로 선택된 것들이 남는다. 그리고 그 반복은 결국 하나의 방향성을 만든다.

 

어쩌면 지금의 매거진은 ‘완전히 나다운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기보다, 수많은 선택과 수정,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면서도 끝내 남게 된 것들의 집합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그 위에 무언가를 올린다. 그것이 진짜 나인지,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나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로,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는 상태로.

 

 

김윤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