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한창이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흐릿해진 채, 전쟁은 추하게 이어지고 그 속에서 국가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 고통 뿐인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이는 방패막이로 전선에 내몰리는 어린 군인들과, 무차별적인 폭격 속에서 목숨을 잃는 민간인들이다. 주변 국가는 전쟁으로 경제적, 물질적 손해를 입는다지만, 참전국의 시민들은 보금자리와 가족, 친구, 그리고 일상의 전부를 잃는다. 수뇌부들의 다툼 속에서 왜 고통은 시민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위험한 그림들》에는 '죽임당한' 이들의 역사와, 역사를 기록한 그림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글이 아닌, 그림과 함께 역사를 읽어나가는 책이다. 시작하는 글에 저자가 말하기를, '저는 역사를 읽고 외우는 방식이 아닌 목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으며, 그것은 과거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절감했다'고 하며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실제로 책은 하나의 그림을 제시한 뒤 얽힌 역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또 다른 미술 자료들이 더해지면서, 미술과 역사는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나는 《위험한 그림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혐오와 전쟁 속 희생자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녀사냥'과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녀사냥, 그리고 전쟁
첫 번째 작품은 톰킨스 해리슨 매티슨의 〈마녀 검사〉다. 두 소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자 마을 사람들은 그 원인을 '마녀'에게서 찾고자 했다. 혼미한 두 소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여성들의 이름을 말했고, 사람들은 그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용의선상에 오른 여자들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사지를 묶은 채 온 몸 구석구석 악마의 표시를 살핀다. 소녀들이 말한 세 여자는 마녀로 몰리고, 이후 감옥에 갇힌다. 〈마녀 검사〉는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현대 의학자들은 두 소녀의 병을 맥각 중독으로 추정한다. 호밀빵에 묻어 있던 맥각균이 경련, 환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애초에 병을 옮긴 '마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마녀가 필요했다. 병, 죽음, 기근 등 모든 재앙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홀몸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며, 급이 낮고, 힘이 없는 여자들. 그렇게 시작한 마녀사냥은 마녀사업이 되었고, 그 희생자는 약 4-6만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끝내 처형당한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죄없는 여성들을 죽이는 행위, 완전히 혐오에 가깝다. 그러나 〈마녀 검사〉라는 그림을 보고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ㅡ하는 의문이었다.
'살을 너무 뺐다', '태도가 바뀌었다', '누군가를 따라했다', '이상한 무리랑 놀더니 사람이 바뀌었다' 등, 한 여성 연예인에게 쏟아졌던 말들이 생각난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고 욕을 하거나, 성적인 화보를 찍었다고 비난을 하거나. 물론 특정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대중이 겨누는 화살은 늘 다른 이에게도 향하기 때문이다. 그 화살은 누군가를 죽인다. 십자가에 매달고, 돌을 던지거나 화형을 해야만 마녀사냥일까. 온라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채 책임지지 못할 말을 쏟아내는 것 또한 또 다른 형태의 마녀사냥이다. 미디어에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이 다가 아닐테고, 설령 그것이 전부라 해도, 그 이유로 비난할 자격은 없을 텐데.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마녀사냥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전쟁'이라는 더 거대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두 번째 작품은 크리스토퍼 네빈슨의 〈의사〉다. 제1차 세계대전 속, 고통받는 군인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영국, 프랑스 등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독일은 독가스를 살포했지만, 이들 역시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방독면을 제대로 착용하지 못해 자신들도 중독되며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이 진전한 거리는 고작 4.8킬로미터일 뿐이었다. 그림 속 부상당한 군인들의 모습은, 당시 전쟁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보여준다.
영상 매체와 미디어는 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21세기에 전쟁의 참혹함은 기록을 넘어 실시간으로 소비된다. 백병전 영상을 보게 되었던 날은, 아마 이 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동료들이 죽고, 러시아군 한 명과 우크라이나군 한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단검으로 싸우다 큰 부상을 입은 우크라이나군은 조용히 숨을 거두고 싶다고 러시아군에게 말한다. 러시아군은 자리를 뜨고, 우크라이나군은 어머니를 외치며 수류탄 핀을 뽑아 자결한다.
그들은 사실은 싸우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 청년과, 스스로 죽기를 택한 청년. 전장이라는 곳이 아니었다면 웃으며 마주쳤을지도, 혹은 스쳐지나갈 뿐인 사이였을지도 모르는데. 국가의 싸움 속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의 모습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의사〉를 보고 그들을 떠올렸다. 전쟁에 의한 희생된 이들을.
위험한 그림들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행위를 멈춰서는 안 된다. 마녀사냥은 단순히 옛날 일이 아니며, 전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 역시 훗날의 역사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모순을 발견하고 비판을 던져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한 그림들》은 단순히 '역사와 그림을 엮어내 큐레이팅한 책'으로 읽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 속에 담긴 시대의 폭력과 혐오, 고통을 통해 오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희생당해야만 했던 이들, 죽임당하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