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생각하지만, 돈을 쓰는 일은 참 쉽다. 어떤 물건은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서 곧바로 지갑이 열리곤 한다. 사고 싶다는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에서 생겨나는 걸까? 아마도 그 물건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 지향하는 삶의 방식, 또는 좋아하는 미적 요소를 발견할 때 본능적으로 소장 욕구가 생겨날 것이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_포스트 서브컬쳐는 바로 이러한 소비의 동기에 주목한 기획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고수하는 태도와 가치를 들여다본다. 부제목인 ‘포스트 서브컬쳐’ 개념도 흥미로운데, ‘서브컬쳐’란 간단히 말해 사회의 주류 문화로부터 일탈한 문화를 일컫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포스트 서브컬쳐’는 하위문화가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브랜드 구조 안으로 이식되는 단계를 지칭한다. 서브컬쳐의 상승세에 따라 대중들의 취향은 더욱 세분되었고, 이를 저격하기 위한 각 브랜드의 전략도 새롭고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시는 Finder, Collector, Customer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Finder 섹션에는 여러 매거진들이 짤막하게 문화 산업에 관한 최신 인사이트들을 나열해 놓았다. 필자 역시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통해서 트렌드를 파악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친근한 방식이었다. 관람객들은 원하는 주제의 짤막한 내용이 담긴 지류를 선택하여 가져갈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 따라서 소비하는 패턴을 가시화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Collector 섹션은 이 전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음악, 출판, 영화, 패션으로 나뉜다. 각 브랜드가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소개하고 있는데,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있는 점이 흥미롭다.
음악 코너에서는 서도밴드, 데이브레이크, 페퍼톤스 등 각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이와 연관된 음악을 바이닐 앨범 형식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어지는 출판 코너였는데, 출판사들이 부스를 만들어 그 안에 각자의 콘셉트를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유물, 습관, 관측, 재미, 예술, 창작 등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 코너에서는 독립 영화들에 대한 리뷰어들의 창의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었고, 패션 코너에는 각 브랜드의 옷에 대한 철학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지막 Customer 섹션은 미술관으로 치면 뮤지엄샵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전시에서 본 브랜드들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약간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결국 이 전시는 내 지갑을 열기 위해서 고심하여 마련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니 그 의구심은 정확한 사실이었으며, 거기에 잘못된 것은 없었다. 이 기획은 애초에 ‘전시’라기 보다는 거대한 ‘팝업 스토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울트라 백화점>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물건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펼쳐낸 기획이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 개념을 주요하게 사용한다. 키치는 고급 예술과 유사하지만 조잡한 형태의 모방 예술이나 이와 유사한 예술 현상을 일컫는 단어인데, 이 전시를 감상한 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 역시 키치였다. 예술의 형식을 빌렸지만 경제적 계산에 충실한 이 전시가, 예술을 대중화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것을 저질화시키고 상업적 논리에 종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키치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시는 한 번도 자신을 예술로 받아들여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나는 어쩌면 ‘전시’의 권위를 너무 찬양하고 있었던 나머지 이러한 팝업스토어가 전시로 라벨링 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기획은 사실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단적인 증거는 Customer 섹션에서 내 지갑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빈티지 SP 레코드 커버를 편지지 봉투로 재해석해서 판매하는 것을 보자마자 마음이 동했고, 바로 구매해 버렸다.
이로써 “소비의 동기가 되는 취향을 저격한다”라는 기획 의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잘 들어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출판, 영화, 패션의 다양한 콘텐츠를 살펴보는 시간은 관람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상업 논리에 굴복했다는 씁쓸함이 남았지만, 시대를 읽는 본 기획의 시선이 날카로웠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취향은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잘 설계된 브랜드의 전략인가? 어쩌면 당신의 지갑이 열리는 방식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