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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제주도 말로 '숲'이라는 뜻의 '곶'과 '나무 덩굴이 엉클어져 있는'이라는 뜻의 '자왈'이 합쳐진 단어다. 원래 이곳은 가시덤불이 워낙 빽빽해서 사람들은 이 땅을 경작하기를 포기하고 기껏해야 땔감을 베는 정도로만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을 허락하지 않은 숲은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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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암이 남기고 간 지형


 

곶자왈은 끈적한 용암이 분출되고 그것이 깨어지면서 요철과 같은 돌이 형성되고 쌓인 지형이다. 흙이 없고 성기게 놓인 돌 틈 사이로 공기층이 형성되어 1년 내내 땅속의 공기가 새어 나온단다. 그래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기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열대 북방 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 한계 식물이 공존한다.

 

한 지역에서 전혀 다른 지대의 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곶자왈이 유일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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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스르지 않고 스러지는 일


 

그런데 막상 숲속에는 가시나무가 별로 없었다. 흙이 거의 없고 돌과 썩은 낙엽만 있는 땅에서 작은 덩굴식물이 자라면 그 사이로 가시덩굴이 자란다. 다시 가시덤불을 헤치고 관목이 자라고 키 큰 교목이 자라면 가시덩굴은 햇빛을 받지 못해서 말라죽는다.

 

즉, 가시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던 곳에 점점 나무가 우점하여 가시덩굴이 사라지며 ‘곶(숲)’이 되면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쓰고, 나무가 베어지고 해가 드는 자리는 덤불이 다시 자라서 ‘자왈(돌과 덩굴)’이 됐다가 다시 ‘곶’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멸과 탄생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지금의 '곶자왈'이 되었다. 30년 뒤 곶자왈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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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자도생의 길


 

곶자왈의 특징 중 하나는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의 굵은 밑동을 잘라내면 나무는 보란 듯이 더 많은 가지를 내었다.

 

나이테는 매년 잘려 나갔으나 나무는 죽지 않았다. 뿌리는 뿌리대로 한껏 독이 올랐다. 흙이 아닌 척박한 돌무더기에 내린 뿌리는 살아남기 위해 제 몸을 둘로 셋으로 나눴다. 찢겨 나가는 아픔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렇게 백 살이 넘은 나무가 되었다. 나무는 한시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잘려 나가는 가지를 살찌우려고, 메마른 자리에 정 붙여 보려고.

 

아름드리나무가 되지 못한 나무의 신산스러운 인생이 가지마다 뿌리마다 오롯했다. 치열한 생의 흔적을 가만히 좇다 보니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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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숲이 가르쳐준 것 


 

곶자왈에서 개체가 가장 많은 종은 바로 이 귀여운 콩짜개덩굴이었다. 콩을 반으로 '쪼개'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콩짜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시에서 키우려면 적정한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매일매일 충분한 물을 뿌려줘야 한다. 그만큼 습도에 민감한 식물인데, 곶자왈에서는 돌 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가 얘들을 키우는 거라고 했다. 사람은 못 할 일을 자연은 한다.

 

꾸지뽕나무는 가지가 채 영글지 못했을 때는 새순을 뜯어 먹는 포식자인 애벌레를 공격하기 위해 가시를 낸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몸통이 굵어지고 어엿한 나무가 되면 가시를 거둔다. 애벌레가 갉아먹는 것쯤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조금 다치더라도 중심이 단단한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무도 사람도 뾰족한 가시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온다. 넉넉한 존재가 되는 때가.

 

칡나무와 등나무를 일컬어 갈등이라고 한다. 칡나무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얽히기 시작하면 풀기가 쉽지 않고 얽힘 당한 개체가 죽어야 그 '갈등'은 끝난다. 그러나 말라죽은 덩굴 아래 다시 건강한 새순이 자라고 다른 한쪽을 죽인다. 결국 죽고 사는 일, 갈등하고 공생하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굴레 안에서 영원히 회귀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안에서 죽음을 따로 떼어 놓고, 갈등을 따로 떼어 놓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아닐까.

 

살아내기 위해 그저 온힘을 다하는 나무와 풀들, 성장하기까지의 아픔과 강렬한 생명의 의지.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와 생사의 순환을 보고나니 사사로운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열정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다 정 외로우면 제주도에 있는 콩짜개 덤불을 떠올려야지. 손톱크기밖에 안되는 주제에 얼마나 튼튼한지.

 

두려움과 설렘에 번민하던 나에게 숲이 가르쳐준 것. 그렇다고 갑자기 내가 나무라도 된 것처럼 의연해질 수는 없겠으나, 다시 한번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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