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센티2.jpg

 

 

노르웨이어로 ‘센티멘탈 밸류’는 말 그대로 할머니의 커피잔처럼 본인에게는 세상을 의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영어 제목은 콜 포터의 곡 같은 멜랑콜리한 스탠더드 재즈의 느낌도 나는 것 같다. 무언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 시간, 부모와 화해할 가능성,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 자라나는 아이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오래된 집 같은 것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은 낡고 사라진다.

 

- 요아킴 트리에 감독 씨네21 인터뷰

 

 

노르웨이어와 영어로 해석했을 때, 영화 ‘센티멘탈 밸류(정서적 가치)’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 그러나 실은 내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에 대한 영화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는 그것(정서적 가치)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면서 이미 겪어낸 시간들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남들이 보기에 이미 종결된 역사이자 어떤 의미도 발생하지 않는 기록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이자 중심이기에, 이 과정은 괴로울지라도 삶에 있어 필수 불가결하다.


 

우리가 시간의 포화 속에서 각자 주관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결국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 요아킴 트리에 감독 씨네21 인터뷰

 

 

본편의 주인공, 보르그 가족들에게 있어 ‘센티멘탈 밸류’는 아버지 구스타브가 집을 떠나기 전, 온 가족이 함께 살았던 붉은 페인트 집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동생 아그네스는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올 계획이었으며, 아버지 구스타브는 이곳을 배경삼아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 아그네스의 언니, 노라는 어릴 적 집의 시점에서 가족사를 다루는 에세이를 쓸 만큼 집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반면 유려하게 흐르는 카메라 무빙으로 집의 외관과 내부를 담아내는 영화의 오프닝은 집의 아름다움보다 집의 결함이자 균열을 드러낸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과 잘못 증축되어 갈라진 벽,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는 마치 보르그 가족처럼 언제 허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허하며 낡아 있다.


사실 이들에게 집은 향수를 자극하는 따듯하고 다정한 공간이 아니다. 아내와의 잦은 싸움으로 어린 딸들을 집을 떠났던 구스타브에게 집은 후회와 절망을, 구스타브가 떠난 뒤 남겨진 어린 노라와 아그네스에게 집은 깊은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어른이 된 두 딸과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 서 있는 구스타브에게 집은 아직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재이자 인생처럼 보인다.

 


센티1.jpg

 

 

그렇다면 이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이며, 보르그 가족을 기억하는 거대한 시선으로서 집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건대 노라와 구스타브의 균열을 봉합하는 아그네스의 직업이 역사학자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아그네스는 이미 벌어진 시간의 간극과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기록을 열람해 현재의 자리에 놓는 인물이다.


오래 전, 집을 떠났던 구스타브가 집에서 열린 아내의 추모식에 등장하면서 멈춰있던 가족들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이별과 만남 사이에 생략된 시간만큼이나 장녀 노라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아버지 구스타브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노라를 따로 불러낸 자리에서 15년 만에 제작하는 신작 영화의 주연자리를 제안한다. 자신의 현재와 과거의 상처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의 태도에 화가 난 노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 이후로 다시 멈춰버린 두 사람의 시간을 봉합하는 것이 바로 아그네스다.


아그네스는 아버지가 건넨 시나리오의 주인공이자 아버지의 어머니인 카린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국립기록보관소를 찾는다. 카린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존한 저항군으로, 이후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아그네스는 담담한 어조로 고문의 과정을 작성한 글과 고문장면을 재현한 사진을 열람한 끝에 아버지의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시나리오가 언니 노라를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그네스.jpg

 

 

아그네스의 행위는 집이라는 공간이 지닌 특성과도 맞닿아있다.

 

인간과 달리 집은 기억에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소음과 침묵, 흐느낌과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그 순간들은 소멸하지 않고 집안 곳곳에 남아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카린의 고통이 구스타브에게, 구스타브의 고통이 노라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개인은 모든 시대의 역사를 품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이해하고 나면, 보르그 가족에게 집이 지닌 의미 또한 명확해진다.


집은 어린 시절 노라의 페르소나이자 3대의 역사를 모두 기억하는 기록보관소이며 예술이 탄생하는 영화적 공간이다. 그래서 영화는 집이 기억하는 순간을 예술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미처 건네지 못한 진심을 말한다. 카린의 이미지가 노라의 이미지로 겹쳐지고 과거가 현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불필요한 장면을 삭제하는 편집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던 구스타브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원테이크로 촬영한다. 가상의 공간인 세트장에서 노라는 어린 시절의 구스타브를 바라보고, 구스타브는 홀로 남겨진 노라를 어떠한 생략도 없이 바라본다.


그제야 늘 대화에 실패했던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를 이해한다. 적어도 그것을 시도하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노라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뛰어가는 구스타브의 행위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있던 두 사람이 멈추지 않고 끝내 뛰어간 끝에 마지막 장면에 당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서서 한 프레임에 담긴 두 사람을 오랜 시간 응시한다.

 

 

센티5.jpg

 

 


컬쳐리스트 한소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