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삼매경(2026) 포스터.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1210915_yqbovaik.jpg)
불교에서는 사는 동안 가지는 모든 집착을 번뇌로 본다. 나아가 삶은 고통이며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행복이라 본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던 아주 어릴 적, 불교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는 종교처럼 보였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지금, 불교에서 주장하는 바는 아주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지금 당장 이 짧은 삶을 돌아봐도 후회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즐비하고, 자세히 들여다 봐야 몇 번의 행복을 간신히 발견할 수 있다. 이따금, 이렇게 작은 손 안에 담길 정도의 행복을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꿈은 이뤄지면 그것을 이루기 전의 광채를 금방 잃고 항상 그 순간의 최선 대신 그 너머의 가능성만을 바라보게 되기 일쑤다. 그렇기에 삶은 행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발밑에 수많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탑처럼 쌓아가는 일과 같다고 느껴지곤 한다.
가슴에 품은 꿈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미련을 놓지 못하는 것도 번뇌다. 이 꿈을 놓지 못하면 이것은 윤회의 고리처럼 평생을 우리 안에서 떠돌며 우리를 고통 속에 빠뜨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 가득한 삶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꿈이 고통이라면 쉬이 포기해버리는 것이 정답일까. 삶에 지쳐 무기력해졌던 근래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한 연극, <삼매경>이 이러한 고민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인생은 한낱 꿈이라지만, 꿈은 너무나 소중해서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1234259_lrisbfax.jpg)
<삼매경>은 한 연극 배우가, 죽음 이후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한 삶을 다시 시도해보는 꿈과 같은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평생을 바쳐 완벽을 완성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에 닿지 못한 예술가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다. 그는 자신이 훌륭하게 소화해내지 못한 연극 <동승> 속 자신이 맡은 배역인 어린 '도념'과 마주하고, 그가 되고 싶었음을 고백한다. 배우 '지춘성'이 읊는 대사는 미련해보일 정도로 솔직하다.
이내 화면 전환이 이루어지고, <동승>의 극중 장면들이 재생되는 가운데 그는 연기에 각주를 달듯 중간 중간 끼어든다. 그의 상념 속에서 도념과 그의 위치는 수시로 바뀐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연극의 한 장면 속에 현재의 자신이라면 어떻게 연기했을지를 시험하는 듯하다. 그의 죽음이 도념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줄도 모른 채, 그는 그저 연극 삼매경이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1210944_umeilivw.jpg)
자신의 미련 가득한 과거를 끝없이 반추하던 그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한다. 저승의 문턱에서 그리웠던 어머니까지 만났음에도, 지춘성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이승으로 거슬러 간다. 그러고는 죽음과 생 사이를 횡단하는 물 속에서도 자신의 연기 스킬을 날카롭게 가다듬으려 노력한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완벽한 도념이 되기 위해서다.
스물일곱의 지춘성은 연극 연습을 하던 순간, 제대로 된 배역을 맡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의 순간, 연극 <동승>에서 도념을 맡았던 순간들을 재경험하고, 그에 간섭해 완벽한 연기를 완성하려 한다. 사실 죽음을 거슬러 왔음에도 그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외부의 이야기들에 휘둘리고, 자격지심과 싸운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도념을 연기한지 31년이 지난 후 그의 삶을 채운 마르지 않는 갈증, 축적된 피로, 사라지지 않는 자격지심은 그의 연기를 한층 폭발적인 경지로 끌어올린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2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1210944_dbxzdepu.jpg)
이는 세월이 흘러 도념의 삶과 지춘성의 삶이 많은 부분에서 닮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도념을 죽인 후 그 자리에서 미망인을 따라가 그의 양자가 되는 꿈에 젖은 도념을 연기하는 그는, 부족하면서도 어머니의 온기에 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채울 수 없는 결핍을 미망인을 따라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저승에서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한 미망인을 바라보며 도념은 굳게 믿는다. 도념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고, 도념의 삶을 온전히 자신이 꿰차려 하는 탐욕스러운 시도를 그는 멈추지 않는다.
얄궂게도 연극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도념이 토끼를 죽인 죄가 밝혀져 미망인이 입양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이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결말이다. 지춘성은 도념이 느끼는 설움과 외로움을 자신의 것처럼 온몸으로 맞으며 서서히 인정하게 된다. 자신의 "아름다운 미완성"을 받아들일 때라는 것을. 도념을 사랑하고 추구했던 그가, 결국 자신 안에 도념이 있고, 도념 안에 자신이 있음을 비로소 깨달으며 도념이 되는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일임을. 그것은 도념의 결말에서 배우인 그가 벗어날 수 없다는 필연 때문이 아닌 결국 연극이 그의 삶이었고, 그의 삶이 연극이었다는 너무나 뻔한 사실을 되새기는 일이었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2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1210945_hxzoperm.jpg)
배우 지춘성은 극중에서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울며 말한다. 그 어렵고 힘겨운 순간을 이겨낼 자신은 없으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예술가의 숙명을 그는 죽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삶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했던가. 예술가는 번뇌를 안고 그것을 동력 삼아 끝없이 완벽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에게 꿈은 이룰 수 없을지라도 소중하다. 완벽하지 않았던 삶일지라도, 죽으면 사라질 꿈일지라도 소중했기에 이토록 후회되는 것이다.
치열하게 부딪혔기에 '하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는 삶, 그러나 '이루지 못했음'이 가슴에 사무치는 서러운 생애를, 그 누가 함부로 매도할 수 있을까. 눈물을 훔치며 명동예술극장을 나올 때, 문득 부싯돌에서 튀는 불꽃처럼 찰나의 빛이라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