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예능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 2’에서 소녀시대 윤아가 출연했을 때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진중한 얘기를 나누던 이효리와 윤아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있던 말을 던지게 되고 이내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 같자 황급히 바깥으로 나가 내리는 눈을 치우며 코를 훌쩍거리던 장면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나면 그냥 크게 울어버리면 되지 왜 애써 외면하려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뒤 집안에 큰일이 있은 뒤로 나는 울음이 나올 것 같을 때마다 마치 그때의 윤아처럼 청소를 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에 일부러 타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매번 울어버리면 두 발로 온전히 서 있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바람부는날이면그림속으로] 앞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03232627_ioaohazi.jpg)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마음이 소란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굉장히 많다.
허나영 작가의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자기 자신을 모르던 때부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알게 된 오늘까지의 마음 이야기를 날씨에 빗대어 표현하며 그림을 통해 다정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안개, 구름, 비, 폭풍, 별이 빛나는 밤 등 총 9가지의 날씨로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으며 르네 마그리트, 피카소, 이중섭, 프리다 칼로, 클로드 모네 등 18인의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마음과 감정을 마주하게 도와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에 대한 해석이 아닌 ‘그림을 그린 사람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20대 시절 의지하던 친구의 죽음으로 온몸으로 슬픔을 표현하던 때나,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족들과의 단절 생활에서 그리움에 사무치던 삶 속에서 그려낸 작품을 보며 그들도 천재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엘리트 화가의 길만 걸어왔을 것 같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사치로 인한 불우한 말년 시기와 에두아르 마네의 낙선작 이야기는 실패의 순간은 누구에게도 피해 갈 수 없음을 보여주고, 뭉크와 프리다 칼로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 특유의 분위기로 나타내어 후대에 길이길이 개성으로 남게 된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샤갈의 삶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는데, 어릴 적 멋모르고 간 샤갈전에서 다른 이들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심취할 때 나는 샤갈 그림 특유의 우울함이 느껴져 보기가 힘들었었다. 그 이유가 안전하지 못한 시대 속에서 고향과 가족, 연인을 평생 그리워함에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땐 그의 그림이 그저 우울한 느낌이 아닌 담담하려고 애쓰는 슬픔 같아 더욱 깊이 있게 느껴졌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화려한 액자 속 명화들을 바라볼 땐 느끼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위로받는 산책 같은 느낌의 기록 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을 보고 작가를 떠올리는 흔한 방식이 아닌 작가의 삶을 통해 그림을 보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 책에선 예술가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가를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런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셨어요?”라고 물으면 왠지 “그저 살려고 그랬어요”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마치 우리가 “그냥 살아가려고 하는 거죠”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란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강인한 마음으로 빛을 그려내던 ‘모네’의 삶과 그림처럼 다시 해가 뜨는 날이 돌아온다고 맥락 없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싶다.
잠시 숨어도 괜찮다. 그곳에서 당신이 바람 소리 대신 자신을 아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