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지금, 올해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나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일력을 말할 것이다.
달력의 원래 기능은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이 며칠인지, 한 해가 얼마나 흘렀는지를 알려주는 것. 하지만 세계문학일력은 이 단순하고도 익숙한 기능 위에 특별함을 더했다. 오늘 만나는 문장을 마음에 새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세계문학일력은 세계문학 작품 속 문장을 달력의 형식을 빌려 소개한다. 하루에 한 문장이 소개되고 사용자는 매일매일 새로운 문장을 만난다.
이 일력의 가장 큰 장점은 문장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좋아요’를 누를 수 있고, 모바일 화면에서 바로 필사할 수 있으며, 문장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메모로 남길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아카이빙해서 월별/연별로도 모아볼 수 있다. 특히 필사 방식이 가장 흥미로운데,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내고 문장을 옮겨 적는 일련의 행위였던 기존의 필사 모바일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매체로 옮겨온다. 출근길 지하철이나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도 문장을 기록할 수 있다.
그렇게 문학은 하루의 틈 사이로 들어오며 일방적으로 읽히는 텍스트를 넘어 사용자가 반응하고 기록하는 대상으로 확장된다.
세계문학일력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문장이 독서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1월 19일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리아나」 속 문장이 소개되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그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문장을 읽자마자 ‘좋아요’를 누르고 필사를 했다. 메모에는 짧게 '그럼 이제 사다리만 만들면 돼'라고 남겼다. 마음에 깊이 박힌 문장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가 이 문장이 쓰인 책이 궁금해졌고 결국 도서관으로 향했다.
2월에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험이 있었다. 특히 2월 23일의 문장이 그랬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진짜 모험이란 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 건 밖에 나가서 찾아야 할 터였다.'
이 문장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더블린 사람들」에서 발췌된 문장이다. 「오스카리아나」와 달리 이 작품은 이미 읽은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영문학 강의에서 공부했던 텍스트였다.
문장을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문장이 있었나?'였다. 작품을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이 문장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책을 다시 읽으러 또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읽어본 『더블린 사람들』은 예전에 읽었던 책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그때는 작품 전체의 구조와 주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더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인상 깊은 문장에 시선을 두고 천천히 읽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텍스트가 다른 결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일력은 매일 하나의 문장을 소개한다. 그 문장은 새로운 책을 읽어 보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이미 읽었던 작품을 다시 펼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문장들은 내 삶의 어딘가에 스며들어 각자의 의미를 갖게 된다. 문장에서 시작된 생각이 또 다른 문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마다 오늘은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