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영원히 기억되어 내 삶을 뒤바꿔놓기도 하고, 때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순간이 가진 이런 모순적인 성질은 내가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간의 가치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순간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곤 한다. 공연예술은 대표적인 순간의 예술이다. 특성상 대부분의 경우 공연 중 촬영이나 녹음과 같은 행위가 일체 금지되기 때문에 순간의 예술이라는 가치가 보존된다. 하지만 그만큼, 관객의 입장에서는 극을 보는 한 번만에 극의 모든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기억력이 좋지 않아 항상 이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 같다. 인터미션(공연의 1막과 2막 중간의 짧은 쉬는 시간) 동안 공연을 보며 느꼈던 것을 메모장에 떠오르는 대로 휘갈기기도 해 보고,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실황 영상들을 돌려보기도 하는 등 기억이라는 휘발되기 쉬운 형태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기록으로 남기려 애썼다.
내가 본 모든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혹시 못 떠올린 게 있나 걱정하다 보면 공연의 여러 순간들이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록된 글과 영상을 다시 보더라도 그 장면을 보는 순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 감정은 오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때의' 느낌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록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공연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렇듯 공연예술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바로 그 시작은 '어떻게 하면 내가 본 공연들을 오래 가게 기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어느 한 관극 이후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공연 중에서는 가끔 일정 기간 동안 관객들이 커튼콜을 촬영할 수 있는 '커튼콜 데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공연 중 유일하게 카메라로 무대를 촬영할 수 있는 이벤트라 영상 또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의 공연을 예매하여 커튼콜 모습을 담아가곤 한다. 나 또한 이 기간에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커튼콜은 배우들이 나와서 감사 인사를 하면 관객 박수로 화답하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촬영을 하게 되면 휴대폰을 들고 있느라 박수를 칠 수 없게 된다. 또 카메라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무대를 볼 수도 없다. 고생한 배우들을 위해 박수 소리가 나오는 그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번 이 부분을 고민했지만, 결론은 앞서 말한 기록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결국 언제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순간을 나만의 기록으로
변화는 올해의 한 관극에서 비롯되었다. 그날도 커튼콜 데이였고,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휴대폰을 꺼내지 말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튼콜까지 공연을 끝까지 온전히 즐기고 싶었달까.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촬영하느라 바쁠 때 박수를 치며 커튼콜 장면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공연장을 나왔을 때, 촬영을 한 때보다 훨씬 그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였을까, 점차 기록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고 “차라리 이걸 보고 있는 이 순간을 즐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에 뮤지컬 <레드북>을 보고 왔다. 3시간 남짓한 공연이었지만,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공연을 보는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 순간을 잡을 수 없음에 아쉬워하며 공연이 끝나고 휴대폰 메모장에 기억나는 순간을 적는다. 하지만 그 기록은 이제 기록하기 위한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기록해야 할 것 같은 부분만 적고, 공연에 대한 온전한 감상과 아끼는 장면은 내 안에 품는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형태의 느낌이 더 오래 행복을 주었다.
실제로 마지막 넘버가 흘러나오고 공연의 막이 내리는 장면쯤, ‘아, 나는 이 기억으로 또다시 한 해를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한 번만 더 본다면, 그 기분을 한 번만 더 느껴본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 충동적으로 같은 공연을 한 번 더 예매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해 버렸다. 처음으로 그 장면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과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새로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명이 희석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라이브 공연의 특성상 매 공연이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장면을 다시 보았을 때 들 또 다른 느낌이 처음의 그 생생한 느낌을 침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가 품은 그 순간과 그때의 느낌은 그 어떤 감상보다도 가치 있고 빛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순간을 즐긴 기억과 그 여운이 가장 가치 있는 기록이라는 것을.
순간의 행복
순간을 제대로 즐기는 법도 하다 보니 느는 것 같다. 공연을 보는 횟수가 늘어가다 보니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되고, 공연을 보는 중/본 후의 만족감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공연은, 내가 비로소 순간을, 현재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공연에서 찾은 이러한 가치가 일상에서도 연습되어 소중한 순간의 느낌을 나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지나간 순간을 아쉬워하는 시간에 그때의 느낌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려 노력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 중 '행복이란 현재를 살기'라는 가사에서도 이러한 나의 욕망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신기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예전부터 순간을,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에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해소 해준 건 공연예술이라는, 아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지나간 순간을 아쉬워하기보단, 그 순간으로부터 느꼈던 느낌에 집중해 보자. 그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잊고 싶지 않을 때, 이미 그 가치는 내 안에 있다. 아쉬워하지 말고 그 기분을 즐겨보자. 그 순간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순간을, 현재를 사는 것의 행복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