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만큼 기획자라는 진로를 생각하고 꽤 살아왔던 나날들.
최근 몇 년 만에 좋아하던 장르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막막함이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에 실제 방송 기획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책을 읽을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4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고, 이 챕터 안에 짤막한 에피소드들로 PD가 기획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담겨 있다. 기획이라는 거대한 단어 아래에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누군가의 일기를 보는 듯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연이나 음악을 좋아해서 방송국 PD를 만약에 하게 된다면, 엔터 분야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살림남'과 같은 관찰 예능의 연출을 맡은 PD가 기획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담긴 책을 읽으면서 어색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특히 연예인들과 작업했던 에피소드를 보면서 이 사람이 좋은 모습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것이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개인적으로 비호감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의 극히 일부의 모습만 보고 이르게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람"에 대해서 가장 많이 한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입체적이다. 내가 만약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을 한 번 했다고 그 사람을 단번에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나에게는 잘 맞고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비호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순간의 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어떤 사람이든 개인적인 선호도를 배제하고 상대방에게 동일한 관심과 호감을 갖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기획자라는 직업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선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한 인간이자 기획자라는 역할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직접 경험해보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르게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장르이든 기획이라는 일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슬퍼하면서도, 인간관계 때문에 또 하루를 살아가고,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가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예능을 보고, 책을 읽고, 연극과 뮤지컬을 보면서 재미있어하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모두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현실 세계에서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판타지라거나, 과학적 요소가 담겨있는 SF 장르일지라도 이런 콘텐츠 안에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결국 사람이 보고 즐기고, 사람과 함께 감정을 나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것이 어느 장르에서건 기획자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자, 난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닌,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과 추억, 기억 속에 자리 잡아 어느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획자는 결국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관찰하는 태도를 갖추도록 노력해햐하고, 항상 진심으로 사람을 상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