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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뮤지컬 <팬레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뮤지컬을 보면서 주의 깊게 보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조명이다. 조명의 연출로 극이 풍성해지는 걸 볼 때마다 그 빛에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빛은 무언가를 주목시키거나 어둠을 환하게 밝힌다. 인물의 감정을 나타내거나 극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극적인 요소가 되어준다. 또한 빛의 찬란함이 희망이자 구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빛이 때로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한다.
뮤지컬 <팬레터>도 빛이 중심으로 다뤄진다. <팬레터>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을 지키려 했던 문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재 소설가 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세훈.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는 빛이 있는데 해진의 뮤즈이자 비밀에 싸인 작가 '히카루'다. 히카루는 일본어로 '빛나다'라는 뜻이며 이 작품이 빛을 중심으로 다뤄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내면의 어둠을 비추는 빛
안녕. 나의 빛, 나의 악몽
극 중에서 모두가 히카루를 실존 인물이라 믿지만 사실 그는 세훈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세훈은 글을 쓰고 작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현실은 그를 점점 내면의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어둠을 견디기 위해 하나의 빛을 만들어낸다. 글을 쓰는 또 다른 자아이자 되고 싶었던 모습.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히카루다. 세훈은 자신의 이름 대신 히카루라는 필명을 사용했고 존경하던 작가 해진에게 보내는 편지조차 히카루의 이름으로 남겼다. 히카루는 세훈의 내면을 비추는 가장 밝은 빛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세훈의 안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다. 히카루의 편지를 받은 해진은 점점 그 존재를 믿기 시작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해진에게도 히카루는 자신의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가 되었고 히카루의 문장은 글을 쓰게 만드는 불씨가 되었다. 그는 히카루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세훈은 자신이 만들어낸 빛이 타인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세훈은 해진이 믿는 히카루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점점 더 그를 현실로 만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히카루는 세훈의 뜻을 조금씩 벗어난다. 처음에는 세훈을 지탱해 주던 빛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세훈이 감당해야 할 존재가 된다. 히카루를 계속 빛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세훈을 다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히카루는 이야기 속 인물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듯이 세훈의 내면을 떠나 하나의 독립된 자아처럼 느껴진다.
이는 무대 위 조명 연출을 통해 더 분명해진다. 히카루가 세훈의 말과 글을 통해 등장할 때 바닥에 드리워지는 원고지를 연상시키는 조명은 그가 '글 속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했다. 원고지 같은 빛 위에 서 있는 히카루는 아직 이야기 안에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이질감을 남긴다. 그리고 '별이 반짝이는 시간'에서 무대를 가득 채우는 별빛 같은 조명은 히카루가 더 이상 세훈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확신하게 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 빛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모든 인물을 잠식하는 듯해서 말 그대로 빛에 삼켜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빛
아무리 점령당한 땅이라도 예술마저 점령당할 순 없잖아.
뮤지컬 <팬레터>에서 빛은 개인 내면을 비출 뿐만 아니라 시대를 비추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팬레터>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로 말과 글, 생각마저 통제되던 어두운 시대다. 이 시기 예술 역시 억압받는 대상이었고 빛을 잃기 쉬운 영역이었다. <팬레터>는 그런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고 밝게 비추는 빛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작품 속 '칠인회'는 그 상징적인 존재다. 실제 문인 모임이었던 구인회를 모티브로 한다. 칠인회는 문학을 논하는 모임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와 예술을 지키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저항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글을 쓰고 서로의 문장을 읽으며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무기를 들지 않아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문장 하나로 어두운 시대에 맞서는 사람들이다. 그 선택 자체가 이들에게는 빛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는 무대 위 조명에서도 드러나는 듯했다. <팬레터>의 무대는 전체적으로 밝지 않다. 빛은 선명하게 무대를 비추기보다는 빛바랜 듯한 색감으로 인물들을 감싼다. 특히 노란빛을 띠는 조명과 무대 위에 드리워지는 낙엽의 그림자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과거의 시간이라는 걸 보여주며 그 시대에서 빛이 얼마나 희미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빛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점령당하지 않고 빛난다.
<팬레터>에서 빛은 단순히 무대를 밝히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내면을 비추고 또 누군가는 그 빛에 눈이 멀기도 하며 끝내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예술의 형태로 남는다. 히카루라는 이름의 빛은 개인의 욕망과 구원이었고 문학이라는 빛은 점령당한 시대에서도 끝내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빛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며 누군가를 살게 하는 빛. <팬레터>는 그 빛이 어떻게 태어나고 흔들리고 그럼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