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오랜만에 만난 상대에게 안부를 묻는 일은 편하다. 하지만 나의 안부를 묻는 순간부터, 그 대화는 부담이 되고 위태로워진다. 겉으로 보이는 행복한 모습 이면에 숨겨 둔, 솔직하고 초라한 나의 진짜 얼굴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떨릴까. 그 상대가 나의 전 연인이라면, 그 떨림은 얼마나 더 비참해질까. 그래서인지 차라리 모든 것이 좋았던 기억만 남아 있는 과거에 머무는 편이 낫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자주 과거에 머무르는지도 다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한 영화 〈두 번째 계절〉은 이별한 두 남녀가 다시 과거를 마주하며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계절을 보여준다.

 

 

*

이 글은

영화 〈두 번째 계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4.jpg

 

 

‘마티유’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출연한 작품은 모두 좋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프랑스의 배우다. 대부분의 배우가 쉽게 듣기 어려운 이 한마디는, 그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영화 배우로서의 성공과 달리, 연극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스스로 포기한다. 그리고 도망치듯 외딴 시골의 한 리조트로 휴양을 떠난다. 전화기 너머의 아내는 남편의 안부보다 업무 처리에 더 몰두해 있어, 리조트에서 그는 혼자 무료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과거의 연인 ‘알리스’와 다시 연락하게 된다.

 

 

05.jpg

 

 

‘알리스’

 

그녀는 시골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피아노로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연인인 ‘마티유’와의 이별 이후 깊은 우울에 시달렸고,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세상에 들려주지 않은 채 오직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유명 배우의 방문 소식이 퍼지고,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먼저 연락을 건네, 지나간 연인과 과거 대신 지금의 일상을 나누기 시작한다.

 

 

03.jpg

 

 

이들의 재회는 겉보기에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안부로 시작된다. 이별 이후 각자의 삶을 잘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재회가 어딘가 위태롭게 느껴진다. 현재에는 등을 돌린 채, 오직 재회의 순간만을 기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그들만 과거로 돌아간 듯 보인다. 서로 비어 있는 공간이 그들을 과거로 다시 끌어당긴 것일까. 아무런 계산 없이, 두 사람은 현재를 잠시 잊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이 만남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이 만남은 철 지난 과거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이미 한 번 겪었듯, 지금도 다시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알리스’를 남겨둔 채 떠났던 마티유는 그녀에게 현재와 과거의 사과를 남기고, ‘알리스’는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며 아팠던 과거를 위로했다. 이처럼 말없이 도망치지 않고, 각자의 아픔을 솔직하게 꺼내 놓으며 서로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 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선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수미상관처럼, 위에서 내려다본 한 대의 택시가 길을 달리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영화의 처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었다면, 끝은 이별을 등지고 떠나가는 주변 풍경이 어쩐지 풍성해 보여 현재로 떠나는 길이 경쾌해 보인다. 물론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착각은 의도된 것일 것이다. 과거를 등지고 다시 달려가는 현재의 모습은 전혀 다른 풍경이니까.

 

우연히 다시 마주한 과거 앞에서, 안주하지 않고 그들처럼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이미 지나간 계절이지만, 다시 한 번 마주하고 다음을 시작하게 하는 영화 〈두 번째 계절〉은 오는 28일 국내 개봉한다.

 

 

메인 포스터.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