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최근들어 다수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생겨나고 그만큼 많은 전시들이 열리며 작가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침체한 미술 시장으로 어려움을 겪는 개인과 단체도 적지 않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공공기관의 성공과 활발한 SNS 활동 등에 기인하여 예전에 비해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가장 높은 시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술(시각예술)의 물리적, 개념적 범위가 시시각각으로 변화 및 확장되는 상황에서 동시대 미술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주목할 만한 것이 여러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관하는 미술상이다. 미술이 평가에 의해 순위가 매겨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을지라도, 심사자 각자의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심사는 그 자체로 동시대 미술의 현황과 이슈를 보여주며 미술에 대한 갈피를 잡기에 좋은 이정표다.

 

이번에 25회를 맞은 송은미술대상 역시 2001년 이래로 지속되며 젊은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해왔다. 현재 송은에서 진행중인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은 556명의 지원자 중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포괄하고 있으며 동시대 한국 미술을 깊이, 또는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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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김무영 작가의 〈반으로 잘린 여인〉(2025)을 마주하게 된다. 제목에서나 형태에서나 다다이즘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된 듯, 아직 미완인 듯 모호한 지점에 있다. 동명의 무대 마술을 모티프로 하였으며,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마술을 비틀어 대상화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특히, 주름진 모양과 어두운 상자 형태는 카메라를 빗대며 시각체계의 구조를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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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영상 작업을 관람할 수 있는 좌석 공간으로 활용된다. 여기에선 이아람 작가의 〈밟힌 벌레마다, 별이 된다〉(2025)가 상영되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서울 용산기지와 3세대 재일 한국인과 같이 외부 주체로부터 강압 받았던, 복잡한 역사를 안고 있는 존재들이다. 나레이션 역시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가 중첩되어서 들린다.

 

땅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공간이며 다른 곳으로 도피할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역사는 땅에 기록되기 마련이다. 용산기지 땅을 지배하는 주체는 일본과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땅의 기억인 터의 무늬, 곧 ‘터무니’를 중시했던 선조들처럼, 작가는 수십 년간 지도에 표시되지 못했던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위로한다. 영상에서 잠깐 보여지는 일본 옛 군용부지 비석도 일상적인 풍경 속에 우두커니 서 있으며 기억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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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한 켠을 거대한 양모 스크린이 막고 있다. 매끈한 표 면에 빈틈이 없는 스크린이었다면 단절감을 느꼈겠지만, 중간중간 나 있는 구멍으로 언뜻 보이는 건너편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스크린 뒤를 살펴보게 한다. 스크린에는 ‘미지’와 ‘운드’라는 두 가지 구조체가 떠다닌다. 비고 작가는 〈미지운드〉(2025)에서 서로 다른 디지털 구조체 혹은 신체들의 표면이 접촉할 때 자동으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합쳐지는 메타볼 구조를 활용한다.

 

처음엔 무엇이든 잘 먹지만 모든 걸 낯설 게 본 ‘미지’만이 존재하다가, ‘미지’가 사라질 미래가 두려워 ‘운드’가 다음으로 탄생한다. 이윽고 ‘미지’와 ‘운드’가 합쳐지더니 ‘나’까지도 그것에 통합되어 간다. 점차 대상이 늘어감에 따라 약간의 간격을 두고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린다. 작가는 관람자로 하여금 디지털 환경과 물리적 환경을 오가게 하며 ‘나’는 과연 온전히 한 존재로서 존재하는지, 종종 스스로가 낯설어지지 않는지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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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색 양모 스크린을 벗어난 시선은 목질 바닥재를 거쳐 다시 나무색 종이 질감의 물체로 향한다. 신민 작가의 〈SERV-ICE〉(2025)는 얼룩덜룩한 종이 제빙기들이 가운데 얼음이 쏟아진 공간을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다. 각각의 제빙기는 해석할 수 없는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지만, 모여있는 모습과 사람 크기만한 형태감이 마치 진짜 사람들이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언어유희가 담긴 작품의 제목은 얼음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제빙기를 통해 노동자를 은유하며, 목소리를 모아 합창하는 그들의 연대를 통해 사회 구조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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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술 내에서 디지털 매체의 기술과 환경이 개발됨에 따라 가상의 네트워크 영역이 주목받는 가운데, 일부에선 반대급부로 과거의 물리적 매체에 관심이 보이기도 한다. 영화 필름은 그러한 오래된 매체 중 하나로서 눈에 보이지 않고 추상화된 개념인 시간을 물질적으로 실체화하여 만지고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민정 작가의 〈192 프레임의 죽음〉(2025)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카운트 다운 리더의 시간을 주목한다. 이 시간 동안 프레임의 움직임은 없으며, 이를 ‘죽음’으로 명명한 작가는 탄생과 죽음, 출발과 끝과 같이 대비되는 두 개념의 연결점을 시사한다.

 

이 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미학과 매체를 바탕으로 고유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은 특정한 경향이나 미학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형식을 지닌 작업들을 병치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복합적인 풍경을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해 보이는 것은 어떤 하나의 ‘정답’이나 ‘방향성’이 아니라, 각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태도 자체다. 미술상이 경쟁과 선별의 장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는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이자, 아직 명확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들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열린 장으로 기능한다. 변화하는 미술의 지형 속에서 관람자는 이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가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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