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나지 않던 때부터 아버지의 서재는 경영과 경제에 관한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곳곳에 자리한 자기계발서 중 익숙한 이름이지만 쉽게 펼쳐보지 못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다.
소설과 전공 서적만 읽던 내게 자기계발서는 멀디 먼 존재였다. 당연한 말만 하는 것 같고, 다 아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정말 이 당연한 것들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 혼란이 찾아온다. 예시를 보면서 찔리는 부분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서 들어오는 지적은 줄어든다고들 한다. 어리니까 바뀔 가능성이라도 있지, 나이가 들면 그게 그 사람의 본질이기 때문에 말해봤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에 기인한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중립적이면서도 나의 발전을 기대해 주는 점검표. 살면서 한 번쯤은 점검해 보아야 할 목록들이 여기 들어있다.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계발서는 결국 꼭꼭 씹어서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야 한다. 그리고 입력만큼 새로 출력해 보아야 한다. 내가 내 나름대로 소화해 본, '카네기 마스터' 홍헌영이 해설한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다.
02.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과 감사를 하라
이 원칙은 상대방 자체에 감사를 표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성품이나 자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칭찬은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말이다. 친구 관계에서는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친구의 성과에 대한 칭찬이었음을 생각하면 아직은 내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특히 가족! 가족에게 축하나 칭찬을 건넨 지 얼마나 오래인지. 집에 가서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해보기로 다짐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칭찬을 받아들이는 처지에서도 이 원칙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좋은 칭찬도 있지만, 인간관계는 마냥 쉽지만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내는 꼬여있는 피상적인 칭찬은 신경 쓸수록 뒷맛이 찝찝하다. 타인에게서 듣는 칭찬이 기분 좋아야 하는데 자꾸만 이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말을 뱉은 건지 의심하면, 끝이 없다. 생각할수록 복잡한 문제는 간단하게 접근해야 한다.
타인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그에 응답한다. 타인의 어떤 말도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좋은 부분은 기쁘게, 진실한 충고는 달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내보내면 그만이다. 타인의 의도에 너무 노여워할 필요 없이 내 자리를 지키다 보면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레 내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06. 상대의 이름을 잘 기억하라
아이들도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한다. 이전 직장이었던 학원에서 어린아이들의 공부를 봐줄 때 가장 먼저 한 것도 슬쩍 문제집 표지에 적힌 이름을 훑고 반갑게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처음 보는 아이들도 놀란다. 선생님, 제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라면서, 눈에 이채가 돈다. 우리 학원 친구인데 당연히 알고 있다고 얘기하고 설명을 시작하면 한없이 올라가는 입꼬리와 늘어나는 인중으로 기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라면서 이름을 불릴 일은 점점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지칭하는 말들이 점점 늘어나는 탓이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 선생님, 선배가 되어 살아가다 보면 내 정체성을 잃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그 첫걸음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타인을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을 어필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선생님이라고만 불릴 뿐 내 이름을 말할 일이 없는데, 내 이름을 처음으로 물어 본 반 학생들에 좀 더 마음이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평하게 모두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없는 날, 원장님께 내 이름을 언급하며 그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다고 얘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내가 기분 좋은 일은 남들에게도 좋다. 타인의 이름을 잘 외우는 비법도 담겨 있는 이 책, 추천할 만하다.
12. 잘못했으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연애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나도 아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네가 자기야 미안해했잖아? 그럼, 환승연애 이딴 거 안 나왔어." 그 담화의 맥락은 전혀 모르지만 이 말 하나로 느낄 수 있는 건 어떤 말은 뱉지 않으면 너무 멀리 돌아가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재앙은 제때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엉겁결에 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인공이 곤욕을 겪는 이야기가 많은 이유도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과 사과 한마디면 해결될 일을 질질 끌어서 신뢰를 잃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다. 잘못을 인정하면 평판이 망가지고, 큰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은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그 절벽이 높지 않다는 것은 뛰어든 후에 깨닫는 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과는 구체적이고 빠를수록 효과적이라는 것.
지금을 위한 카네기 에디션
기존의 번역서는 1930년대의 사례를 단순히 나열했기에 현대의 상황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며, 이 책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카네기가 제시한 원칙의 본래 뜻을 밝히고 그 실천 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물 흐르는 듯하다.
독립적인 조언이 아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원칙들을 독자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는 남김없이 삭제했다. 카네기가 가지고 있던 의도를 그대로 복원하며 현실에 맞게 수정한 완전판이다. 이 책이 길을 헤매는 이들로 하여금 사람과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