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용에 따라 재미의 판가름이 난다기보단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 있어 나뉜다고 본다. 단언컨대 나를 바라보며 말하던 상대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전하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 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이 다 유쾌한 내용일 수는 없지만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금지된 행동을 몰래 하는 것 같아 흥미도가 높아진다. 이렇듯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도 강 약 중간 약을 조절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스피치 강사가 있다면,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전기수‘라고 불렀다.

<뮤지컬 판>은 소설이 금지된 19세기 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읽는 유명 전기수 ’호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매설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부잣집 양반가의 도련님 ’달수’가 첫눈에 반하게 된 ’이덕’을 따라가다 매설방의 존재를 알게 되고, 우연히 호태를 만나 ‘이야기’의 맛에 빠져들다 결국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동행하는 이야기이다.
마당놀이의 느낌이 나는 사진들을 보고 관객 참여도가 높겠구나 하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극과 관객의 간극을 없애 버리는 연출이 신박하게 느껴졌다. 먼저 입장할 때 모든 관객들에게 ’뻐꾸기’라는 호칭과 함께 뻐꾸기 그림이 그려진 야광봉을 쥐여준다. 이 야광봉은 극 중간에 진행되는 즉석 이야기의 주제를 정할 때 투표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배우들과의 인사를 할 때도 사용되어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전기수의 능력을 보여주는 즉석 이야기를 만드는 코너도 뮤지컬 중간에 있었는데 ‘호태‘가 관객이 던진 제시어 두 개를 더해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비록 이야기 자체는 약간 어색한 점이 많았지만 그것을 몸짓으로 유쾌하게 전달하여 현장 분위기를 띄우면서 관객들이 마치 매설방의 객원이 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여 무척 재밌었다. 또 ‘산받이‘를 통해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하고, 맛깔나는 추임새를 통해 극의 흐름에 도움을 주기도 하여 무대와 관객석의 간극을 좁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도 인상 깊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통 인형극’을 사용한 부분들이었다. ‘내시의 아내‘는 당시 시대를 풍자한 패관소설의 내용이었는데, 자칫 말로만 전달하면 밋밋하거나 표현이 잘 안될 수 있는 내용들을 인형극으로 전달하며 유쾌하게 풀어내었다. 특히 이 부분은 야릇한 분위기도 자아내고 있어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 인형극이 떠올랐다. 이어서 달수와 이덕이 함께 부른 ’줄 위에 설 때면‘은 필사를 하는 이덕이 자신의 소설을 향한 꿈을 펼치고자 하는 마음과 신분을 넘어서고 그녀를 응원하는 달수의 마음이 인형의 몸짓을 통해 너무 예쁘게 표현되었다. 클라이맥스 부분에 두 사람이 줄에서 뛰어 하늘을 나는 인형을 표현하려 손을 맞대고 두 팔을 하늘 위로 쭉 뻗은 모양이 인형과 함께 하늘 속에 있는 것 같이 보여 감동적이었다.

단순히 노래와 극을 합친 뮤지컬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출과 과감한 관객 참여 형식을 통해 다 함께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신명나는 시간이었다. 기존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다른, 좀 더 색다른 참여형 뮤지컬을 만나보고 싶은 ‘뻐꾸기’들에게 추천한나. <뮤지컬 판>은 오는 3월 8일까지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