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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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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꿈을 자주 꾸는가? 나는 매일 꾼다. 어릴 적부터 꿈은 내게 강력한 존재였다. 꿈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은 현실의 논리와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법칙을 따랐다. 그 법칙들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펼쳐지고, 깨어난 뒤에는 나만이 고유하게 기억할 수 있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꿈을 완전히 내 손 안에 잡을 수는 없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치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꿈의 흔적은 사라지곤 한다. 나는 그 편린이라도 붙잡아 보려 애쓰지만 온전히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꿈은 늘 소중하게 느껴진다. 괴상하고 의미 없는 듯한 꿈이라도, 그 순간 순간이 특별하게 다가오곤 한다.

 

꿈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가장 강렬한 것은 바로 왜곡된 시공간이다. 유년 시절 가장 자주 꾸었던 꿈 중 하나는 공간이 끝없이 펼쳐지고, 때로는 다시 좁혀져 가는 것이었다. 분명 5층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4층을 지나 7층에 도달하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압박하는 것은 무엇보다 공포였다. 꿈임을 알면서도 아무리 시도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때도 종종 생기는데, 그 상태는 내게 늘 깊은 불안감을 남긴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꾸는 또 다른 내용이 있다면, 동물에 관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동물이 죽어가거나 죽은 것을 지켜보는 꿈을 자주 꾸는데, 어릴 때 키웠던 물고기 등 몇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웠던 경험에서 유래된 것 같다.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꿈을 잠시 이야기해보자면, 어느 할아버지의 저택에서 놀고 있던 와중 나는 할아버지가 아끼던 뱀장어가 죽은 것을 발견한다. 그 뱀장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데, 개구리의 신체 일부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정원 바닥을 메우고 있던 내용의 꿈이었다. 꿈 속의 내가 받은 충격이 꽤 강했던 만큼, 꿈에서 깬 나도 그 풍경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런 꿈도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그 기묘하고 일관성 없는 세계를 되짚어보며 나는 이 모든 것이 순수한 무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어느 때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내 무의식이 만든 상상력은 때때로 현실의 나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이르게 한다. 때로는 그런 꿈에 대해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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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세계는 창작의 세계와도 비슷하다. 꿈에서의 그 왜곡된 시공간, 논리의 파괴, 감정의 자유로움은 마치 예술의 근본적인 특성과 닮아 있다. 창작 역시 현실의 규범을 벗어나,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작의 과정은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아이디어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 구체적인 형태나 맥락은 자주 흐릿하고 모호하다. 하지만 그 흐릿함 속에서 나만의 세계가 펼쳐지고, 그 세계를 온전히 나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꿈을 꾸는 순간,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곳에선 내 의식의 한계도, 현실의 제약도 없다. 마치 창작의 순간처럼,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떠다니는 기분을 느낀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종종 놀라운 발상을 떠올린다. 이렇듯 창작은 내가 꿈속에서 경험하는 불가능한 세계와 맞닿아 있다. 꿈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는, 창작이라는 또 다른 매개체를 통해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꿈은 내게 지난 후회나 죄책감을 여러 가지 사건이나 소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 코드가 십 년 이상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꿈에서 깬 나는 어느새 이 기묘하고 개연성 없는 꿈을 퍼즐처럼 맞춰서 내 현실과 대입해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것은 때로는 너무나 감성적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가끔은 정말 잔인해서 그런 발상을 한 내 무의식에 놀라기도 한다. 창작 또한 마찬가지다. 때때로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나 그림이 나의 내면을 너무나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해서, 나 스스로가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작업을 통해 내 안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창작의 본질이 아닐까. 내가 두려워했던 감정이나 기억들이 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그것은 나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꿈은 여전히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내게 가장 큰 흥분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쌓아온 꿈일기를 돌아보면, 그것은 마치 논리와 질서가 깨진, 혼돈의 세계를 탐험한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밤 잠에 들면서, 내일은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혹은 이번에는 꿈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잠에 든다.

 

이렇게 꿈은 나에게 단순한 일상의 파편이 아니라, 내가 풀어내야 할 또 다른 미로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나는 가끔씩 자신을 발견한다. 창작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예술을 통해 나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변형시킨다. 내가 꿈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예술로 풀려나갈 때,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리는 그림, 쓰는 글, 만들고자 하는 작품들이 결국은 꿈에서 꾼 것들과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과 창작, 그 경계는 사실 그리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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