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나는 유독 이벤트가 좋았다.
하루 차이인 오빠와 나의 생일을 꼭 분리해서 케이크를 준비해달라고 요구했으며, 부모님의 생일, 결혼기념일, 친구의 생일 등을 먼저 챙겼다.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는 과정이 설렜고, 서프라이즈에 기뻐하는 이들을 보는 게 낙이었다.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무리한 가격의 선물을 준비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내심 남들도 나에게 그만큼의 축하를 건네주길 바랐다.
그만큼 축하받지 못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면 우울했다.
가뜩이나 1월 초인 생일은 방학과 겹쳐 많은 이로부터 축하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때는 친구들이 보내주는 메시지도 어딘가 불만족스러웠다. 그마저도 오지 않으면 어긋나고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특별한 날에 나는 ‘혼자됨’을 견디지 못했다. 파티 또는 가족 식사라도 해야 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번거로운 것'으로 취급하는 무던한 부모님에겐 이런 내 성향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작년 새해는 런던에서 보냈다. 2026년을 코앞에 두고 일기장을 되돌려 읽어보니, 친구와 불꽃놀이를 보러 간 모양이었다. 당시의 나는 2024년을 회상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얼굴로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어쩌면 ‘정석대로’ 새해를 맞이했다.
정확히 1년 지난 2025년 12월 31일, 나는 처음으로 새해를 혼자 보내고 있다. 점심에는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고, 초라하다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내일 먹을 밥을 지었다. 미뤄뒀던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었다. 밥을 안치고 얼마 되지 않아 뜸이 드는 소리가 들렸고,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난방비를 아끼겠답시고 보일러를 꺼놓아서 조금 서늘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밥 짓기로 마무리되는 오늘 하루는 어제와 전혀 다른 게 없었고, 오히려 어제보다 평범했다. 원래의 나라면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친구를 부르든, 만나러 나가든, 하다못해 케이크라도 사서 나의 2026년을 위한 초라도 불었을 것이다.
특별한 날엔 모든 게 완벽히 알록달록해야 하는데, 이젠 이어질 내일을 위해 밥을 짓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피어오르는 김을 보다 보면 뭐 이 정도면 됐지, 싶다. 제야의 종 방송을 볼지 말지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집 근처 신촌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에 혼자서라도 가볼까, 생각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종국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적어놓은 목표는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한 해를 나름대로 살아냈고, 큰 변화는 없었다. 자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새해를 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기절이라도 시켜주어 1월 2일에 깨어났으면,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낭만이 내게 아닌 것 같을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지는 건 매번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은 특별한 일 없이 밍밍하게 이어진다. 그러니 무색무취의 일상 앞에서 실망하기보단 해왔던 대로 내일 먹을 밥을 짓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나의 공간에서, 생각나는 이들에게 전화 한 통 걸자.
우리의 삶은 원래 지극히 사사롭고 오롯해서, 그 자체로 오래 남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