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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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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것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감각적인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인지 흔히 말하는 멍-때리는 시간에도 머릿속이 분주하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너무 많고, 귀여운 존재를 발견하면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아름다움과 귀여움을 느끼는 감정은 애정이 어린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 안에는 다정함이 담겨있다. 반대로 보고 싶지 않은 것,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은 몸과 마음을 갉아 먹는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거나, 세상의 어떤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할 때에도 그렇다. 때때로 모종의 이유로 그냥,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다.


그렇게 왜 어떤 것은 아름다운지, 또 다른 것들은 애틋한 감정을 일렁이게 하는지가 늘 궁금하다. 명징하지 않은 대상을 향한 분노와 이따금 찾아오는 슬픔에 의문을 가진다. 나의 사고와 감정은 정말 오롯이 '나'의 것일까?

 

나로써 고집하는 것, 지키고 싶은 가치, 포기할 수도 없고 타협하기 어려운 것,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끝내는 이루고 싶은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소망이나 희망과 같은 단어에 기대어서 '행운'의 상징을 모으기에 몰입했다. 나에게도 어떤 좋은 일이 불쑥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맘때에 더욱 깊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들이 단어로 조합되고,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어 글을 이루었다. 글을 쓰고, 수정하고, 기고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무엇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쓰는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지, 이를테면 선호와 취향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를 적용해보면 일하는 방식,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사람들과의 관계성까지 폭넓게 살펴보는 계기로 다가왔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 내면을 가득 채워서, 이를 연료로 무언가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 무수한 연결고리에서 가지를 뻗치는 사람.

 

0에서 1로 넘어올 때는 그런 자각조차 없었으니까, 숫자 2를 부여받고 알게 된 것들에 참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될 때마다 더욱 그러했다. 실제로 '이야기'의 애호가로서 인류의 문화를 뜻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를 보고 듣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서 요즘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 과학 등과 연관된 '과학' 분야를 탐색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것은 온전히 알기에 어렵지만, 무한한 호기심과 앎에 대한 갈망,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은 때때로 삶의 원동력이 된다. 의문이 가득했던 매일, 이처럼 다가온 긍정의 신호는 그 자체로도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야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지. 지금, 그리고 현재에 개인과 사회로 이어지는 역사를 직시하고, 이야기를 잘 풀어서 기록하고 싶다. 끊어지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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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2025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29번째의 해가 지나고 있다.

 

최근에 작가의 서재를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했다. 책 설명과 함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올해의 장면'이라는 키워드가 인상 깊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대개 여행의 순간, 좋았던 전시, 다시 가고 싶은 카페 등에 대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 느꼈던 '좋았던' 감정이 떠올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환기를 위해서 떠난 공간의 잔상이나, 감상의 시선에서 바라본 기쁨 또는 즐거움이다.

 

이처럼 순간적으로 떠오는 장면 이외에도 한 해를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바로 여러 장면을 하나의 문장으로 엮어보는 것이다. 이날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문장이 탄생했다.

 

①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들의 접점을 발견했다.

② 혼자 있어도 여전히 좋고, 다시금 '함께'라는 이름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③ 익숙함의 평온과 낯선 감각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④ 꿈을 찾아서 이를 한 걸음씩 자신만의 속도로 쫓는 사람들이 멋있다.

⑤ 경험은 양면이 존재한다. 경험이 쌓여서 일을 잘 해결할 수는 자양분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이미 경험한 것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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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 것 같아. 아니, 여전히 알 수 없어'를 반복한다. 이처럼 이제야 알 거 같다고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어느 순간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이어질 거 같다는 생각 든다. 이전과 조금 달라진 점은 의문보다는 긍정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고, 오롯이 나만이 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을까. 흔히 말하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어딘가 비빌 언덕이 곁에 있었던 줄도 모르고, 애써 그곳은 늘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랐던 거 같다. 꽤 많은 것이 변화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멀리서 목격했다.

 

자아실현을 이유로 방황이라는 자유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그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여러 장면이 스쳐 가고, 정말 주위에 많은 것이 변화했다. 몸과 마음의 상태, 타인과 주고받는 말과 행동, 나의 역할, 시간과 자원의 움직임, 사회적 구조의 뒤틀림 속에서 수많은 것이 변화한다. 모든 것을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내 뜻대로 말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되뇌어 본다.

 

무엇하나 그냥 흘러가지 않았던 0과 2 사이의 시간. 오늘도 그 하루가 흘러갔다.

 

그리하여 좋았던 시간도, 슬픔으로 얼룩졌던 하루도 안녕.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한강, 『흰』, 문학동네, p. 59 진눈깨비.

 

 

(···)

이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해도 창밖은 지금처럼 캄캄할 것이다.

요행히 좀더 오래 잠들었다 깨어날 수 있다면, 

더디게 밝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암흑의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스며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저 불빛들은 여전히 명료한 정적과 고립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어 있을 것이다.

 

한강, 『흰』, 문학동네, p. 83 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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