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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왠지 모르게 싱숭생숭한 기분과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은 이맘때의 전유물이다. 올해를 마무리할 준비가 덜 되었는데,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만 하는 내년 앞에 절로 무기력해진다. 혹자는 이런 감정을 두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해외 SNS에서 빠르게 공유되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증후군의 특징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날짜 감각이 무뎌지며 우울한 기분과 함께 붕 뜨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더불어 이 시기엔 ‘나이 먹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 년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연례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한 살 더 먹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릴 땐 날이 다르게 커가는 내 몸과 다음 해부턴 바꿔 불러야 하는 나이란 숫자가 어색했던 것 같고, 학생 땐 해가 바뀌면 반 친구들도, 담임 선생님도 모두 갑자기 바뀌어버리는 환경이 싫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엔 갈수록 비싸지는 나잇값이 체감되기 때문에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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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사피엔스 스튜디오 유튜브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에서 올린 나잇값에 관한 영상을 봤다. 한 출연자가 ‘나이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며 나잇값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값을 치러야 하는 거다. 강매한건데... 어쨌든 먹었으니까’며 나이 먹는 일에 대한 거부감과 압박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표현했다. 원치 않아도 나이는 저절로 먹게 되는데, 억지로 먹어버린 나이에 대해 그 값을 매년 해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이십 대는 한 살 한 살에 더욱 예민한 시기다. 이십 대만큼 초중후반 삶의 모양이 극명히 차이 나는 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언제까지가 초반인지, 중반인지 또 후반인지를 나누는 기준이 매년 뜨거운 감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한 살 어치의 나잇값이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 중 이십 대 중반은 유독 위축되는 나이인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은 젊음을 앞세워 가진 것이 없어도 당당할 수 있는 나이고, 이십 대 후반은 어느 정도 제 길을 찾은 듯한 안정된 나이로 보인다. 더 이상 젊다는 이유로 용인될 수 있는 나이도, 그렇다고 이미 자기 것을 쌓고 다져놓은 어른들과 견줄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그 사이에 낀 이십 대 중반은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 방황하게 되는 때다.


어떤 친구는 학업을 이어 나가려 대학에 남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해외살이를 해보려 무작정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진즉 취업에 성공했고, 어떤 친구는 시험 준비를 한다. 건너 건너 아는 누구는 열심히 취업 준비 중이고 또 누구는 자기 일을 차려 사장이 되었다. 다 같이 비슷한 길을 걷기에 앞뒤 양옆을 살피고 눈치껏 따라가기만 하면 되던 학창 시절은 이제 끝났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길을 안내해 주는 듯한 사람은 전혀 없고, 앞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되니 불안하기만 하다.


요즘 세대들이 불안한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글이 생각난다. 첫째는 반드시 잘해야 하고 항상 좋아야 한다는 강박감이랬다. 둘째는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안 했을 때의 죄책감, 셋째는 원하는 타이밍에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급함이란다. 넷째는 하고 싶은 게 많아 이것저것 만들고 관두는 산만함, 마지막은 아직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해서 오는 무기력이라고 하는데 이십 대 중반이면 모두 겪을 감정들인 것 같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청춘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데,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도 다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대사를 보아도 왜 내겐 쓴 초콜릿만 들었는지 싶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영원히 그립고 벅찬 나이로 만들어 준 김윤아도 불안정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청춘이란 단어엔 슬픔이 내재해 있는 것 아닐까 한다.


내 주변엔 감사히도 좋은 어른들이 많아 이십 대 중반이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 상기할 수 있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스물넷이면 무서울 게 없겠다, 스물일곱까진 범죄만 빼고 다 해봐도 된다, 어린 나이에 대견하다 등등... 이제는 스무 살처럼 우쭐댈 수도, 스물아홉처럼 척척 해낼 수도 없는 나이라 주눅만 드는데 말이다. 그런데 스무 살 때도 똑같았던 것 같다. ‘성인’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에 왠지 책임감이 막중해진 것만 같고, 사회적으로 술과 담배가 허용된 만큼 다른 일은 용서되는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운전도 할 수 있고, 학생과는 다르게 어른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스무 살은 젊은 것도 아니고 너무 어렸다. 지금 보면 갓 졸업한 스무 살이 뭘 알겠나 싶다. 고등학생이랑 똑같이 모든 게 용서되는 나이다. 지금의 나이도 나중엔 한참 어리고 갈팡질팡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로 보일 텐데, 초연해지기 쉽지 않다. 숫자는 시간이 가지는 연속성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부여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하지만 삶이 긴 만큼, 다시 보면 모두 젊었던 만큼, 주변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만큼 언제까지나 늙은 나이는 없으니 당장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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