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캐롤이 들려오는 순간에, 또 누군가는 연말 특집 예능을 보며 한 해의 끝을 실감한다. 나에게 그 신호는 다름 아닌 <핑계고 시상식>이다.
어느새 세 번째를 맞은 <핑계고 시상식>은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의 시작을 알렸다. 공개 4일 만에 조회수 900만 회를 돌파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연말 행사임을 증명했다. 러닝타임은 무려 2시간 30분. 숏폼이 지배하는 시대에 이토록 긴 콘텐츠가 단숨에 소비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이 가진 힘을 말해준다.
<핑계고 시상식>은 지난 1년간 <핑계고>에 출연한 이들을 대상으로 전문 심사위원의 평가와 계원(핑계고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상을 수여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단순한 시상식으로만 볼 수 없다. 시상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럭키드로우, 축하 무대 그리고 ‘유재석의 정’ 코너까지. 이를 통해 거대한 연말 예능으로 완성된다.
라인업 역시 매년 화제다. 유재석의 오랜 절친인 지석진, 이광수, 하하, 양세찬, 이동욱을 비롯해 고경표, 이상이, 지예은, 송은이, 홍현희, 이성민, 황정민까지. 여기에 가수 화사, 우즈, 배우 한지민과 김소현, 송승헌이 더해지며 말 그대로 방송국 연말 시상식 급 규모를 자랑한다. 올해만 해도 총 32명의 인물이 함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편안하다. 화려함보다 친근함이 앞선다.
겉으로 보기엔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핑계고 시상식>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랜 시간 예능판을 지켜온 유재석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결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웃고 떠든다.
출연진들조차 “이런 시상식은 처음”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수많은 공식 시상식을 경험해 온 배우들조차 이 느슨한 분위기 앞에서는 자연스레 힘을 뺀다. 격식보다는 편안함이, 완성된 멘트보다는 솔직한 반응이 중심이 된다.
댓글 반응 역시 이를 증명한다. “백상이고 뭐고 이게 내 연말 시상식이다”, “조회수가 말해주잖아. 사람들은 어떤 시상식을 원하는지” 화려한 무대도, 거창한 연출도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얻는다. 채널 <뜬뜬>의 구독자 수는 289만 명, 평균 조회수는 300만 회를 훌쩍 넘긴다. 이 수치만 봐도 이곳의 계원들을 하나의 대중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핑계고>는 흔히 유재석의 사심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 불린다. 떠드는 걸 좋아하는 계주(유재석)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스트들이 모여 자유롭게 웃고 떠든다. 한 편당 러닝타임이 1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꾸준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청자들 역시 이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게스트들 또한 이 공간을 단순한 유튜브 콘텐츠가 아닌 마음 놓고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자리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렇기에 <핑계고 시상식>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선다.
<핑계고>의 핵심 인물 이동욱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는 무려 제1회 핑계고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이자, 유일하게 3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상식에서도 2관왕에 오르며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툭툭 내뱉는 솔직한 말투와 여유 있는 태도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번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지석진이다. 데뷔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상을 받은 그는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연예인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 시간을 버텨온 과정만큼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유재석은 역시 오래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는 말로 빠르게 소비되는 업계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에게 진심 담긴 존중을 전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이들에게 <핑계고 시상식>은 부담 없이 웃음을 건네는 콘텐츠다. 연말의 어느 저녁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기 좋은 선택지이니 무엇을 할지 고민된다면 대화 사이에 틀어두어도 좋겠다. 억지스러운 자극 없이 소중한 이들과 편안하게 웃고 떠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