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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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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작가는 여행을 다니면서 읽고, 보고, 수집한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엮어낸다. [유지혜 페이퍼]라는 메일 구독형 서비스로 작가의 글들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유지혜 페이퍼]를 수년간 빠짐없이 구독했던 독자로서 작가의 문체를 오래도록 사랑해왔다. 그리고, [유지혜 페이퍼]를 쉬고 있는 기간 동안 작가의 글이 필요해, 재작년에 출판된 [우정도둑]을 읽게 되었다. 그 책 속 ‘책과 거미줄’은 하나의 책에서 시작된 우연히 어떻게 취향이 되고, 사랑이 되며, 결국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책과 거미줄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했던 우연의 순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다시는 그것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한다.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된 앎은 점차 사랑으로 진화한다."

 

"당신의 세계를 뒤덮는 거대한 거미줄은 단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책은 놀랍도록 무시무시한 것이다. 결국 당신은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고. 연결되는 만큼 완성된다고. 당신은 당신의 배경이 되어버린 이 거대한 책의 생태계에 몸을 기댄다."

 

"관계에 대한 발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어져 있는 줄 알았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끊긴 관계, 혹은 전혀 연관이 없는 줄 알았으나 실은 단단히 엮여 있는 관계. 독서와 당신의 관계는 후자에 가깝다."

 

 

좋아하는 것을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냥 하게 되는 어떤 것에 ‘나 완전 빠져있구나’ 하는 순간. 혹은, 마치 거미줄처럼 내가 좋아하는 게 '어디까지 퍼져있는 거야' 싶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어져서 맞닿아있을 때,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흥분될 때가 있다.


[우정도둑]의 '책과 거미줄' 챕터는 나만의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책에 있는 문장처럼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했던 우연의 순간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연의 순간들이 마구 생각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한두 개씩 있을 거라 생각된다. 나도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아니 사랑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흥분에 차서 그것에 대한 역사를 읊을 때가 있다.


유지혜 작가는 작가답게 책과 작가가 거미줄처럼 흥미로운 자신만의 우연들 혹은 알게 된 정보들로 연관된 책을 읽게 되거나 연관된 작가를 깊게 알게 되어, 더 큰 흥미를 갖게 되는 것들을 나열해 놓았다. 어떤 것을 진심으로 계속 좋아하다 보면 이어지는 것들이 분명 있다.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굳이 꺼내어보면 누구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도 그런 것이 있는데, 그냥 “좋아한다”라고만 말하기가 너무 아쉬운 영화가 있다. 여기에 이어진 나만에 우연히 존재하고, 인연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히스토리가 있다. 혹은 수년의 걸쳐 나만의 작은 계기들로 인해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화가도 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화가라서, ‘나 이 화가 좋아해’라고 말한다면 ‘나도’라는 반응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이상의 거미줄처럼 나의 일상과 계속 이어지는 그런 뭔가가 있다.




작은 거미줄


 

위의 경험 중 하나를 나열해 보자면, 20살에 어떤 가수의 곡을 듣고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곡은 음원사이트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SoundCloud나 유튜브에서 찾아들었는데 주말 오전이 되면 그 곡을 항상 틀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곡 중에 한 곡은 남녀의 대화 몇 마디가 시작된 후에 노래가 나오는데, 그 대화는 분명 영화의 대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했지만 네이버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그 노래의 시작 부분을 궁금해하면서 그 노래를 최소한 몇 백 번은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곡의 시작을 우연히 발견하고 말았다. 그 대화는 [Her]이라는 영화의 대사였고 을 보고 있는 중간에 수없이 많이 들어온,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대화가 들리는 것이다. 멈추고 세 번을 연달아 돌려보았고 발견했다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노래와 별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이 노래를, 이 영화를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참 아까워졌다. ‘그 대사가 나와 이런 관계가 있고 노래에서는 이렇게 흘러가고, 영화에서는 그 대사 후에 이렇게 진행된다. 이 노래는 이래서 좋고 이 영화는 이 부분들을 사랑한다’라고 할 말이 너무 많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 내가 진심으로 흥미를 갖는 것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러 갈래들에서 거미줄처럼 넓게 이어진다.

 

우리는 어떤 작품 자체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처음 만났던 시기와 그때의 나, 그 순간의 분위기까지 함께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그저 ‘좋은 영화’인 것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시는 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만의 영화”가 되기도 한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것들을 의식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비슷한 질문과 감정을 반복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우연적인 작품과의 만남도 흥미롭지만, 그 순간 그것을 좋아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로 의미 있다.


어떤 것을 유난히 오래, 깊게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취향을 넘어 나의 시간과 삶에 엮여 있는 것이다. 그렇게 거미줄처럼 이어가고 있는 무언가들을 계속 잇고 있다고 생각하면 설레는 감정이 든다. 언젠가 돌아보면, 그것들은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당신은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고. 연결되는 만큼 완성된다고." _유지혜 [우정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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