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늘 가까운 이름처럼 불리지만, 실제로는 친구보다 먼 사이일지도 모른다. 짐 자무쉬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바로 그 간극에서 시작한다. 부모와 성인 자녀, 그리고 형제자매. 이 영화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기보다는, 이미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놓였을 때 생기는 현상을 조용히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같다. 영화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오히려 하나의 질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각자의 색으로 드러나는 거리 — 'Father'
'Father'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물들의 옷 색깔이었다. 아버지는 포인트로 버건디 색이 들어간 남색 후드집업을 입고있다. 아들과 딸은 아우터를 벗자, 공통으로 버건디색의 니트가 드러난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미묘하게 옷차림이 다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붉은 계열의 옷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한편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옷 스타일과 유사하다. 이렇게 옷 입는 거만 봐도 한 가족이라는 공통분모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이미 각자의 색은 조금씩 어긋나있는 걸 통해 이들이 얼마나 오래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왔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버지는 자신의 유약함,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식료품값, 무너진 벽의 수리비 같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대화 중간중간 드러낸다. 아버지는 왜 굳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이만큼 키웠으니, 이제는 네가 이만큼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무언의 요구일까. 아니면, 부모 역시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끝내 숨기지 않으려는 고집일까.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이 우리가 부모의 약함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 떠올리게 만든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색 'Mother'
'Mother'로 넘어오면 색의 사용은 훨씬 노골적이다. 어머니와 두 딸은 모두 강렬한 빨간색을 입고 등장한다.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은 분명 다르다. 말투도, 태도도, 관계를 대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는 빨강이라는 색이 끝까지 유지된다. 이 선택은 묘한 인상을 남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같은 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Father'에서 가족이 각자의 삶이 중요해지며 멀어져 버린 존재처럼 느껴졌다면, 'Mother'에서는 오히려 서로의 삶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꺼낼지를 이미 예측하는 관계. 그래서일까. 이 장에서는 갈등이 표면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억눌린 감정이 정제된 대화 속에 눌려 담긴다. 가족끼리는 결국 숨길 수 없다는 사실, 아무리 떨어져 살아도 서로의 결을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 이 장을 관통한다.
빨강은 보통 열정이나 사랑을 상징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빨강은 ‘피의 색’에 가깝다. 선택이 아닌 운명처럼 이어진 관계, 끊고 싶어도 완전히 끊을 수 없는 선. 이 장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집요하게 삶을 따라붙는지를 보여준다. 그 집요함은 따뜻함이기도 하고,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다.
남겨질 사람들 'Sister & Brother'
마지막 장인 'Sister & Brother'에서는 색이 거의 사라진다. 무채색에 가까운 옷들, 차분한 화면. 부모가 떠난 이후, 남겨진 형제는 무엇으로 서로를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앞으로의 삶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갈 미래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 이미 지나간 추억이 이 관계를 엮어주고 있다.
부모가 있을 때 가족은, 그래도,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부모가 떠난 이후, 형제자매는 '과거형'으로 이어질 수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부모님과 함께 겪었던 시간, 공유한 기억들이 이들을 가족으로 남게 한다. 그래서일까. 이 장은 유난히 쓸쓸하다. 형제를 묶을 수 있는 것이 추억뿐이라는 사실은, 조용하지만 뼈아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이 쓸쓸함을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오래 남도록 보여준다.
만사형통이라는 말의 아이러니
"Bob's your uncle", 즉 '만사형통이지'라는 표현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만, 이 영화 속 가족들은 오히려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 더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가족이기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가족이기에 더욱 복잡해지는 감정들이 있다. Cheers, 즉 건배의 순간조차 이 영화에서는 완전한 화해나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짐 자무쉬는 대신,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거리에서 서 있는지를 끝까지 지켜본다. 침묵과 시선, 멈춤의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이유다. 말하지 않는 것들, 일어나지 않는 사건들조차 이 영화에서는 서사가 된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누구나 한 사람쯤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연락하지 못한 부모, 애써 거리를 두고 있는 형제, 혹은 다시 만나도 예전 같지 않을 관계들. 이 영화는 그 모든 마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우리 삶에 어떤 무게로 남아 있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