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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단어와 단어 사이
인간의 뇌는 특정 인물, 사물, 사건 등을 하나의 언어로 규정하려 한다. 이것은 뇌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선택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예컨대 영화 산업을 지배한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토대는 선과 악의 구분이었다.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 구조와 기꺼이 기대를 충족시키는 결말로 인해, 관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극장을 나간다. 흥행공식이자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 것이다.
‘은중과 상연’은 기존 대중 장르와 다른 화법을 보인다. ‘은중과 상연’은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특정 언어로 규정하지 않는다. 상연 역을 맡은 박지현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둘의 관계를 정의하기 어렵다고 답한 이유다. 마음껏 좋아하고, 미워하기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속에서 이들은 단어와 단어 사이 그 어딘가에 놓여 있다. 사랑과 우정 사이, 선망과 원망 사이, 동경과 질투 사이, 애정과 증오 사이. 드라마는 쉴 새 없이 두 단어를 오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중’과 ‘상연’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은중과 상연은 언제나 예측 범위 바깥으로 나간 뒤, ‘여기엔 이런 것도 있어’라고 말한다. 이들의 모순된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겹겹이 쌓인 감정의 형태를 한편의 소설처럼 섬세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늘 마음을 숨기는 상연 캐릭터는 몰래 적은 일기장과 죽음을 앞두고 쓴 은중과 상연에 대한 글을 통해 구체화된다. 인간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다면, 나만 보는 일기장 앞, 그리고 죽음 앞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일기장 앞에서, 죽음 앞에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2. 만남과 이별 사이 놓인 것
스토리는 간단하다. 은중과 상연의 10대부터 40대를 다룬다. 둘의 우정이 싹트고 깨지고 또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을 그린다. 그 사이에 ‘상학’이라는 남성이 등장하면, 마치 질투하고 갈등하는 사랑과 전쟁 이야기 같다.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다. 드라마 작가 은중이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은중과 상연’은 ‘사건이 없다’. 그럼에도 극의 초반, 3화에 이르기까지 흡인력 있게 세계를 구성한다.
전체 서사를 지탱하는 구심점, 그 한가운데 상연의 오빠이자 또 한 명의 ‘상학’이 있다. 송혜진 작가는 ‘상학’과 ‘은중’의 관계를 어린 시절 첫사랑 그 이상으로 묘사한다. 이들의 만남은 쪽지로 시작해 편지로 끝난다. 은중이 상학의 방에 써두었던 짤막한 쪽지로 시작해서, 상학이 죽기 전 날 밤, 은중이 쓴 편지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처음에 은중이 남긴 쪽지는 상학에게 발견되는 반면, 마지막 은중이 상학에게 쓴 편지는 발견되지 못했다. 결국 은중의 마음은 상학에게 전해지지 못한 채로 끝났다.
이 닿지 못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만남과 이별 사이, 그들이 연결되는 과정에 있다. 10대의 사랑은 흔히 첫눈에 반하는 한 장면으로 치환되곤 하지만, 은중과 상학의 관계는 작고 사소한 장면의 연결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국어 시험에 나온 단어, ‘염세’에 대해 상학은 설명한다. ‘미워할 염에, 세상 세. 세상을 미워한다는 말이야.’ 그 뒤로 은중은 아무 때나, 정말 아무런 연관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염세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스토리라기보단 일상의 에피소드에 가깝지 않은가. 그럼에도, 너무나 사소해서 이토록 아른거린다.
요컨대 ‘은중과 상연’의 비범함은 작은 것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것에서 나온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흩트리는 것은 이토록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