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따듯하지만 어딘가 미묘한 시선을 담고 있다. 미국 뉴저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를 넘나들며 조명하는 파더, 마더 그리고 시스터 브라더. 그들을 관조하는 각국의 관객들. 저마다의 가족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짐 자무쉬의 시선은 익숙하지만 신선하다.
가족 드라마라고 하면, 대개 눈물나게 감동적이거나 미칠듯이 싸우거나 하지 않은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잔잔하다. 앵글이 차분하다.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축소하지도 않고. 치우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감독의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영화인 듯한데, 짐 자무쉬 영화를 본 적 없는 나는 하나하나 덧셈을 배우는 아이처럼 봤다. 모든 요소는 상징성을 띈다기 보다는,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그 속에서 빛나는 웃음과 은유는 어색함을 해소하기도, 강화하기도 한다. 스크린을 관통하는 어딘가 다정한 낯섦.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Dusty Springfield의 Spooky 선곡이 그래서 탁월하다.
Love is kinda crazy with a spooky little boy like you
Spooky, spooky, oh whoa, all right
Spooky, oh yea yea
I said Spooky yea yea
Spooky는 프로이트의 언캐니를 연상케 한다. “기이한”, “이상한”, “묘한”의 뜻을 가진 “Uncanny”는 “Unheimlich”을 영어로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Unheimlich”는 집, 안락함, 편안함의 뜻을 가진 어근 “heim”에 접두사 “un”이 붙은 단어이다. 단순히 한국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이 단어는 친숙함 속에 깃든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말한다.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두려운 기분. 특히,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 언캐니함이 강하게 비롯된다.
자녀들을 떠나보내고 멋진 차를 타고 데이트에 가는 아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딸, 엄마 아빠의 유품을 보며 떠드는 남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다고 가까운 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가깝지 않은 건 아니다. 거실에 모여 따듯한 저녁 식사를 하진 않지만, 물이나 차 그리고 커피로 건배를 하는 정도. 애매한 시간에 모여 애매하게 마시고 애매하게 헤어진다.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찾는다. 가족이란 그런 것. 보이지 않은 실로 연결된 것과 같다. 그 실의 근본은 부채감일수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일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찾게 된다. 맞추지 않아도 비슷한 색감의 옷을 입는 것처럼. 유년기는 목구멍 속의 칼과 같아서 쉽게 뽑을 수가 없다.(그을린 사랑)
대개 언캐니함을 공포영화로 풀어내길 마련인데, 짐 자무쉬는 다정한 언캐니를 보여줬다는 점이 좋다. 언캐니를 다정하게 말하자면, 스푸키일테니. 꼬마 유령과 같은 낯섦을 지닌 우리 모두의 가족들. 각기 다른 형태로 굴러가고 있는 가족들이 스푸키를 지나 언캐니가 되진 않도록. 1년에 한 두번은 만나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괜히 롤렉스가 진짜니 가짜니 얘기하고. 밥이 네 삼촌이니 테드가 네 삼촌이니 얘기를 해야겠지.
가족은 선택할 수 없기에. 익숙하고 낯설다. 가깝고도 멀고. 가까운것이 꼭 좋고 먼 것이 꼭 서운한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거지. 가족이라는 형태의 관계를 관조하는 것은 꽤 중요하다. 목구멍에 박힌 칼을 피해 나오는 모든 관계의 모양은 칼의 모양을 알아야 이해 되니까. 짐 자무쉬는 가족이라는 이름에 부여되는 수많은 수식어들을 지우고 바라본다. 따듯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