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크기변환]laptop-4906312_1280.jpg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마다 떠올리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핫팩을 챙기고, 김장을 걱정하고, 또 누군가는 겨울을 핑계 삼아 오래 미뤄둔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나는? 겨울이 오면 마음속에 ‘신춘문예’가 찾아온다. 한 해 동안 쓴 시와 수필을 뒤적이며 가장 애착이 가는 문장을 골라 묶어 보내는 일. 그런데 써둔 글이 없으면 매우 슬프겠지. 신춘문예는 꼭 큰 꿈이 아니라 나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연말 행사처럼 느껴진다. 물론 원고를 보내고 나면 비슷한 마음과 후회를 한다.

 

“조금만 더 다듬을걸”

 

“미리미리 글 좀 써둘걸” 제일 빨리 마감되는 신문사부터 십이 월이 훌쩍 지나 받는 곳까지 글이 소진되고 나면 아쉽다.

 

올해는 시를 써서 응모했다. 일정에 쫓기듯 붙이면 마음만 졸일 것 같아서 마감 날짜를 넉넉하게 남겼다. 우체국으로 가 빠른 등기로 글을 붙이고 영수증을 보며 비로소 끝났다고 안도한다. 매번 미뤄둔 숙제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19년 이후 6년 만의 투고다.

 

와 벌써 육 년이나 지났다니. 다 보내 놓은 원고들을 조용히 눌러 닫아두고도 마음 한편에서 문장이 자랐다. 글을 끝냈다는 안도감보다 이제 시작이라는 긴장이 더 오래 머물렀다. 글을 쓴 후에는 뭘 해야 할까? 배우고 싶은 게 생겨 그곳에 지원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썼다. 분명 나를 이야기하는 자기소개서의 내용은 비슷한데 이전에 쓴 글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육 년 전에 쓴 글을 다시 펼쳤다. 그중 꽤 괜찮다고 생각되는 글을 다시 찬찬히 읽었다. 당시에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왜 안됐는지 알만큼 형편이 없었다. 문장도 조잡한 대다가 글에 알맹이가 없다. 어제 읽은 글과 오늘 읽는 글이 다르듯이. 그때 썼던 문장을 버리고 내용을 조금 더 넣어서 글을 완성시켰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새로운 내용이 생각나서 바로 써 내려갔다. 십 이월은 어떻게 보내야 하지 생각했는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시도도 하지 않은 채로 잘 쓰지도 않은데 뭣하러 내라는 마음가짐보단 뭐라도 쓰는 편이 나으니까.

 

신춘문예는 나에게 그런 계절이다. 누군가에게는 연초의 하나의 소식이겠지만 나에게는 매년 새로 찾아오는 일종의 생리 같은 리듬이다.

 

공모 마감이 다가오면 마음이 한 톤 높아지고, 읽고 또 읽어도 다음날 고칠 부분이 꼭 생긴다. 오히려 다 내고 나니 마음이 잠잠해졌다. 쏟아부을 만큼 쏟아부었고,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라는 생각에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평온이 겨울과 닮았다.

 

눈이 내리기 직전의 고요함,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도 천천히 무언가 자라나는 느낌 같은 것. 시간에 쫓기듯 쓴 순간도 있었지만 어제오늘 또 다른 날 새롭게 읽히는 문장들을 고치다 보면 마음이 따라왔다.

 

이 문장들은 단지 결과를 바라는 글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말해주는 지도 같은 것이 되었다. 한 편을 완성시켰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겨울은 묵묵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조금 특별하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만큼 문장은 깊어지고, 기다림만큼 문장은 따뜻해진다. 올해도 그렇게 나는 내가 쓴 글들과 함께 조용히 겨울을 맞는다.

 

 

 

최아정_네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