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세계를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경은 그들의 가장 찬란한 순간만을 보고, 그 순간만을 기억하는 데서 비롯된다.
위수정 작가의 소설 [fin]은 바로 이 화려한 막 뒤에 감춰진 배우와 매니저, 네 사람의 무겁고 은밀한 속내를 파고들며 우리가 꿈꾸던 세계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가면을 쓴 네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
이 소설은 잘 나가는, 혹은 한때 잘 나갔던 배우 기옥과 태인. 그리고 이들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는 매니저 윤주와 상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배우와 매니저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속내를 가장 잘 알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소설은 이들의 아슬아슬한 관계와 점점 무게를 더해가는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독자를 기묘한 세계로 끌어들인다.
배역에 점령당한 삶과 욕망의 그늘
[fin]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고통과 고독을 품은 채 그 감정들을 감추고 살아간다.
기옥은 배역 '메리'가 되어서야 비로소 ‘현실을 사는 감각’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 성공은 그녀의 삶을 잠식해버린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오직 무대 위뿐이다.
매니저 윤주는 10년 넘게 기옥의 곁을 지키며 보살피지만 실제로는 기옥을 위하는 척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한편 태인의 매니저였던 상호는 어린 시절 배우를 꿈꿔왔기에 화려한 배우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누구보다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한다.
이처럼 배우는 무대 위의 삶을 놓지 못하고, 매니저는 화려함을 갈망하면서도 그 중심에 선 배우를 증오한다. 모두가 같은 '무대'를 공유하지만 끝내 이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어긋남은 때로 독자의 시선에서 기만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공통점은 '가짜의 삶'일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아무런 동경도 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한때 동경의 대상이던 사람과 누구보다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과연 ‘무대 아래의 그들’까지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배우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한 명의 일반인인 내가 기옥과 태인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며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존재는 배우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속마음의 괴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채 진정한 자신을 감추는 행위는 배우들의 삶과 다를 바 없다.
[fin]은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 맡은 배역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