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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를 붙잡아보려 한다

2026년에는 그러고 싶다

by 박수진 에디터
2025.12.0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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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나를 오랜만에 생각했다. 이 물음은 몇 년 전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자기소개 질문으로 처음 만났다.

 

정확히는 이런 질문이었다. '무엇인가에 간절해져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스물을 넘은 지 얼마 안 됐던 당시에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8시 30분까지(그보다는 늦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등교해서 11시까지 야자 하다가 집에 간 게 며칠 전 일이었다. 다들 비슷했을까?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90%가 입시였다고 답했다. 나는 입시 때 간절하긴 했으나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다른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까지 취업이 간절했다면, 그보다 조금 지난 시기에는 한 아이가 간절했다. 나는 걔가 무척이나 갖고 싶었고, 얼마간 갖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잃었다는 뜻이다.

 

2025년 동안 붙잡기로 했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취업이고, 다른 하나는 '나'다. 나를 붙잡아보려 했던 건 늘상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려 했지만 해내지는 못했던 시절에 대한 위로였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려 했던 게 아니다.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몰두하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도 나는 그걸 해내지 못했다. 나보다 간절해진 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2025년 중 꽤 오랜 기간을 붙잡았던 애를 포기했다. 걔를 붙잡고 있던 중에도 내 일을 온전히 놓은 건 아닌지라, 취업은 성공했다.

 

취업과 그 애를 다 잡아보려던 건 두 마리 토끼였을까. 포기한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간절했던 것 하나를 이뤘으니 하나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것이라고.

 

그러나 그게 반비례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내가 그를 잃은 것은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음으로 돌아간다. 그 애는 내가 나보다 더 자신을 봐주기를 바란 적이 없었고, 그걸 좋아하지조차 않았다. 오늘 내가 살면서 붙잡아온 것을 돌이키고 든 생각은 그거다. 나에게 조금 더 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느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은 2025년이 끝나고 있다. 한 해의 끝을 20번도 더 겪은 나지만 해가 저무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달 뒤 적을 새해 목표에 나는 또 나를 돌보는 해로 만들겠다 쓸 거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그렇게 쓰겠지만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심은 없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 나에게 몰두하고 싶다.

 

내가 잃은 그 애는 무엇을 붙잡고 살고 있을까. 걔한테는 걔가 있을까.

 

이번에는 해내지 못했지만 언젠간 진짜 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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