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야 아는 그 소중함
현대인이 집에서 다른 장소로 행하기 위해 가장 먼저 거치는 것은 엘리베이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동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2번의 환승을 거치고 내린 지하철역에서 다시 강의실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출발 시간을 결정하지만, 정작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역까지 뛰어가야 했던 경험이 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점검 중일 때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삶의 불편함이 와닿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지하철, 버스, 자동차, 자전거 등 수평적 거리를 이동하는 교통수단만이 인간이 장소 간의 경계를 뚫고 지나가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고층 건물이 즐비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지도상에서 해당 위치에 도착하였더라도 자신이 가야 하는 층으로 다시 수직 이동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단지 문이 열렸다가 닫혔을 뿐이지만 다시 문이 열리면 눈앞에 다른 장소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엘리베이터는 ‘층’이라는 물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수 없다고 믿었던 기존의 의식적, 상징적 한계를 초월한다.
엘리베이터의 비장소화
엘리베이터에서도 여러 사람과 밀착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신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줄어들거나 올라가는 숫자나 허공, 혹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시선까지 통제한다. 이는 아파트 등 주거 공간이나 기업, 학교, 정부 기관 등 공공장소처럼 엘리베이터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대부분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그 이유로 엘리베이터의 비장소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공존하지만 서로 대화하지도, 소통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나도 유치원에 다녔을 때 살던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웃어른을 만나면 인사했지만, 어느 정도 크고 난 뒤부터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을 봐도 먼저 인사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외출 준비에만 신경 쓰고 있어 나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이웃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에서 기계적 상호작용만 존재하는 ‘비장소’로 전락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장소가 많아지면 우리는 그 장소들을 단지 통과하고, 잠시 머무르는 도구적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하게 된다. 이곳에서 맺은 일시적인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은 결국 고독 속에서 도시의 부품으로만 기능하게 된다.
물론 온, 오프라인 사회에서 맺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 때문에 높아진 피로도는 우리가 새로 관계 맺는 걸 꺼리게 한다. 그러나 하루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짧다면 짧은 여정을 함께 하는 이웃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 번 남겨 보는 건 어떨까? 가장 쉽고 빠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