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311.jpg

 

 

3만 원. 고등학생 시절 한 달 용돈이었다. 엄마의 지독한 절약 정신으로 인해 나는 이 3만 원으로 친구들과의 약속, 물건 구매를 모두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3만 원이 뭐가 적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내 용돈이 제일 적었다(용돈도 못 받는 사람도 있다는 말은 일단 여기서는 듣지 않겠다).


그렇다면 용돈 대신으로 받은 것은 있었느냐. 옷은 6살 터울 언니가 입던 옷들 위주. 생일 선물? 브랜드 치킨으로 대체. 크리스마스 선물? 기독교 집안도 아닌데 무슨 크리스마스를 챙기니. 어린이날 선물? (초등학생에게) 너 어린이 아니잖니.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선물해주신 적이 한 번 없었고, 용돈을 5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우며 졸랐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 가정은 사려면 살 수는 있는, 정말 전형적인 딱 중산층이었다. 용돈이 2만 원 정도 더 올라간다고 해서 가채가 기울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부턴 알고 있었기에, 나는 얼른 빨리 돈을 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

 

제대로 한 번 가져보지 못한 삶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해야 할까. 꿈에 그리던 ‘내 돈’을 벌게 되면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맘껏 사게 되었다. ‘어, 이 옷 예쁘다!’ 구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굿즈가 나왔잖아?! 이런 건 한정판이라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다!’ 구매.


그렇지만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알고, 돈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잘 쓴다고 하지 않던가. 제대로 써본 적이 없으니 구매하는 물건들은 항상 실패하고, 돈을 허공에 날리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보고 자란 것이 돈을 안 쓰고 아끼는 거다 보니, 사더라도 항상 비지떡만 샀던 것이다. 차라리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질 좋은 물건을 샀더라면 아마 더 돈을 아꼈을 듯싶다.


그렇게 나의 좁디 좁은 방은 ‘잡동사니’로 꽉꽉 들어 차게 되면서, 마치 나를 감싸는 푹신한 이불로 다이브한 것 마냥 물건들 속에 잠겼다.

 

*

 

아마 그 날도 뭔가 사고 싶었지만,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유튜버가 소개하는 옷 중 맘에 드는 상품을 차마 장바구니에는 담지 못 하고 찜 하기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알고리즘의 변화로 인해 우연히 미니멀리스트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아마 ‘어쩌다 미니멀’이라는 유튜버 분의 영상이었던 것 같다).


10분도 채 되지 않던 그 영상은 내 삶의 방향성을 바꿔주기에 충분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영자신문이나 경제 뉴스를 보고, 직장 다녀와서 저녁까지 차리면서 하루를 꽉꽉 채워서 사는 삶보다, 주변을 비우고 정리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삶이 내 기준에서 갓생으로 느껴졌다. 내가 충분히 직접 실행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삶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영상 속 미니멀리스트의 공간을 보고 내 방을 둘러 보니, 순간 들어찬 잡동사니들에 짓눌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 사놓고 입지도 않는 옷들 등등. 동시에 엄마로부터 물려 받은 짠순이 기질이 다시금 눈을 뜨면서 ’저거 살 돈을 아꼈다면…?‘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약간의 자괴감도 밀려왔다. 나는 그저 써 보지 못 한 돈을 쓰는 ’행위‘에 기쁨을 느꼈을 뿐, 그렇게 해서 산 물건 자체에 행복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

 

영상을 보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비우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책상 서랍 중 맨 윗칸, 내일은 책상 서랍 중 두 번째 칸. 하루에 하나씩, 내 방이라는 공간에 따로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공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질 땐 귀엽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침대 정리할 때 걸리적 거리던 인형들을 버렸고, 멀쩡하지만 잘 입지 않는 옷들은 모두 기부했다(재주가 없는지 중고거래로 팔리지가 않는다). 학창 시절 교과서, 전공서적, 프린트물, 다이어리, 안 쓰는 필기도구들도 모두 버렸다. 추억이 담긴 물건까지 버리는 걸 보며 엄마는 “아깝지 않냐“라고 하셨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강단한 성격(?)으로 인해 그 아이들은 모두 분리수거 행이 되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화장대였다. 색조 제품들이 종류별로 두세 개씩 있었는데(립 제품은 네다섯 개로 더 많았다), 늘 쓰던 것만 쓰고 있었다. 사서 한두 번 사용한 이후로 손도 대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기초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쓰는 것도 아직 남았는데, 좋다는 제품이 세일한다길래 무지성으로 구매해 ‘미개봉 새제품’이 잔뜩 있었다.


정말로 잘 쓰는 것들만 몇 가지 남기고 처분하면서, 난 화장하는 걸 귀찮아 하고, 또 잘 하지도 못 하는 사람이란 걸 여실히 깨달았다. 그냥 예쁘고 좋다는 걸 ‘수집’하는 사람이었다(하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겠나). 그 이후로 화장품을 구매할 때는 내가 잘 쓰고 있고 필요한 카테고리별로 하나씩만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장식장에서 두 칸을 차지하던 화장품 공간이 한 칸으로 줄었고, 지금은 남편 것까지 포함하여 화장품 정리함 하나로 끝난다.


물건을 비우고, 더 이상 채울 물건이 없어 쓸모를 다한 장식장도 버리니, ‘생각보다 내 방이 넓구나..?’하고 탄식했다. 신혼집으로 가기 위한 이삿짐 꾸리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주변이 여백의 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걸 진작 하지 못 하고, 왜 그렇게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수집욕이 강했나 싶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

 

많은 것을 비우고 정리했지만, 필수품이 아닌 선택품 구매를 자제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로 활용하는 미니멀리스트의 궁극적인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영상에서 꿀템이라고 소개하는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행위를 차마 멈추지 못 하고 있다. 개중에선 정말 필요하고 잘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매했는데, 잘 쓰지 못 하는 물건도 한두 가지 있다.


농담곰 굿즈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못 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 멀리 떠나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1. 단순 장식품이 아닌 실사용이 가능한 제품인지, 2. 사서 잘 사용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한다. 그렇게 1번과 2번을 모두 만족한 굿즈들-에코백, 도시락용 보냉백, 하이볼 잔 등-만 현재 나와 함께 하고 있으며, 지금도 잘 사용 중에 있다.


그런데 너무 귀여워서 충동구매한 피규어도 하나 있긴 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미니멀리스트 ‘호소인’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