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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뮤지컬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역시 '커튼콜'이다.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무대 위로 다시 올라와 관객의 환호를 받는 일. 극 중에서는 죽거나 싸우거나 상처받던 인물들이지만 커튼콜에서만큼은 모두 밝게 웃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래서일까, 작품이 비극일수록 커튼콜의 미소가 더 오래 남는다. 끝이라고 생각한 장면이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환호는 오래가지 않는다.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막은 천천히 내려온다.


위수정 작가의 『fin』은 바로 그 '막이 내리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의 마지막 공연과 커튼콜, 그리고 소란스러운 뒤풀이. 그 뒤에 찾아오는 '한 사람의 죽음'. 끝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이야기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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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가 아니어도 연기를 하듯이



작품 안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무대 위 기옥과 태인, 그리고 무대 밖 윤주와 상호.

 

이 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마치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하나의 극을 함께 만들어가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극'처럼 읽었던 이유는 네 인물 모두가 자기 안의 진심을 감추고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듯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옥은 배우로 우아하고 당당히 주인공을 연기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우울함과 불면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한다. 그래서 일상에 있지만 타인에게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인 역시 배우다. 한때는 빛나던 스타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과 폭력성에 무너져가는 인물이다. 그는 "연기는 본심이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심인지, 혹은 진심을 감추기 위해 ‘연기’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남는다.


윤주는 기옥의 매니저다. 기옥을 진심으로 아끼면서도 그의 물건을 훔치고 빛나는 기옥 옆에서 초라한 자신을 숨기려 한다. 기옥 곁에 있고 싶지만 동시에 그를 미워하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긴 채 윤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상호는 태인의 매니저로 한때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사정상 꿈을 포기한 사람이다. 하지만 태인의 대본 연습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배우인 그를 동경하면서도 혐오하는 감정을 갖기도 한다.


네 인물 모두 자신의 내면을 숨긴 채 무대 위에서처럼 '역할'이 주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연극 같은 리듬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와 연기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소설이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펼쳐진 또 하나의 연극”처럼 읽혔다.


 

 

끝이면서도 시작인 커튼콜


 

이렇게 네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 속 사건 하나가 더 크게 느껴진다. 바로 태인의 죽음이다. 『fin』은 태인의 죽음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던져놓는 것이 아닌 마치 무대 위에서 한 배우가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고 퇴장하는 것처럼 그려낸다.


태인의 죽음은 끝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시작점이 된다. 죽음 이후의 침묵이 남은 인물들을 흔들고 각자가 숨기고 살아온 마음들이 조금씩 표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옥, 윤주, 상호는 갑자기 사라진 한 사람의 빈자리를 통해 자신이 맡고 있던 '역할'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fin』의 죽음은 잔혹한 결말이라기보다 각자의 커튼콜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신호처럼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끝이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장면이 시작되는 순간, 마치 조명이 꺼진 무대 뒤에서 새로운 공연이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퇴장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계속해서 등장인물로 살아간다. 삶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커튼콜은 분명 끝을 의미하지만, 그 끝이 항상 완전한 종료는 아니다. 어떤 끝은 다음 시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끝은 끝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커튼콜을 향해 계속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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